2주 전 월요일 ~ 일요일까지 입금완료일부터 배송완료일까지의 평균 소요 일수를 기준으로 합니다.
배송완료 건이 비정상 거래로 판단되는 경우, 집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 물품 크기 | 미입력 |
|---|
| 제조국 | 한국 |
|---|
크기 가로 48 높이 35
오래된 물품으로 흠이 있을수 있읍니다(이미지 사진 참고해 주세요)
낙찰시 배송비는 후불을 원칙으로 하며 금액의 오차가 있을수 있읍니다( 우체국 택배)
개항기 때, 통리기무아문의 총리대신,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복궁 중건 당시 1865년(고종 2) 4월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으며, 9월에는 판의금부사 · 호위대장 등에 임명되었다. 대원군정권에서는 요직에 등용되지 못하다가,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한 뒤에 비로소 같은 해 12월 좌의정, 1878년 영의정이 되었다.
1880년 12월 통리기무아문의 설치로 영의정이 총리대신으로 바뀜에 따라 총리대신이 되었으나, 1881년 유림들의 반대로 사직하고 한직인 영돈녕부사를 지냈다. 1882년 잠시 광주부유수를 지낸 뒤 다시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해 6월 10일 임오군란 때 폭동군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원군이 시행한 당백전 제도에 대해 “일문전(一文錢)이 어찌 백문전(百文錢)으로 쓰이겠는가? 다만, 일문의 가치로만 쓰일 뿐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물건값을 치를 때에도 그런 식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에 이익을 얻은 상인이 많았다고 한다.
1881년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때 유림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홍재학(洪在鶴)은 이최응의 처형을 주장하는 상소를 하기도 하였다. 그 뒤 만인소에 대한 취조관(委官)이 되어 홍재학의 교수형을 집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조약체결 때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일본에 갔던 김홍집일행이 『조선책략』을 가져와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논의(聯美論)를 펼치자, “미국은 본래 원수의 나라가 아니니 서계(書契)를 가져오면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1880년 9월 8일 연미론을 적극 수용하였다.
이에 고종도 병인 · 신미양요는 우리나라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하여 미국과의 조약체결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어 1881년 1월 지난해 6월 자신이 미국사신을 거부한 것을 후회하는 문서를 톈진[天津]으로 가는 영선사 유학생을 통해 중국에 보냈다.
그런데 주화 · 척화 · 개국 등에 관해 뚜렷한 주관이 없이 모두 옳다고만 한다 하여 당시 사람들로부터 ‘유유정승(唯唯政丞)’이라고 불렸다.
시호는 충익(忠翼)이었으나 1905년 문충(文忠)으로 다시 내려졌다.






영수증발행 : 온라인현금영수증(소득공제용 / 지출증빙용)
영수증신청 : 수령확인시에 개인소득공제용 또는 사업자회원님의 지출증빙용(세금계산서대체)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주)코베이옥션에 등록된 상품과 상품내용은 개별 판매자가 등록한 것으로서, ㈜코베이는 중개시스템만 제공하며 해당 등록내용에 대하여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가 사업자회원이 아닌 개인회원의 경우 판매자 정보는 [코베이옥션 결제처리] 이후 판매자의 연락처 등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즉시 제공하게 됩니다.
코베이옥션은 구매안전서비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