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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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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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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재[溫齋] 한규복[韓圭復] 괴석묵난도[怪石墨蘭圖] 1935년도 作品
작품 사이즈 : 144 x 42 < 비단에 채색 , 폭이 넓은 광폭 作品 >
-한자 해석-
峭壁一千尺(초벽일천척) 가파른 벽이 일천척이나 높은데
蘭花在空碧(란화재공벽) 푸른 하늘에 꽃이 피었네.
下有采樵人(하유채초인) 아래 나무꾼이 있으나
伸手折不得(신수절부득) 팔을 올려도 꺾어가질 수 없네
乙亥新春(을해신춘) 을해년 새봄에
溫齋(온재) 韓圭復(한규복)
온재 한규복 [溫齋 韓圭復] < 1881 - 1967 >
대한제국의 관료, 통역관,
서예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관료,
서예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일제 강점기의 신념형 친일파의 한 사람이었다.
1899년 관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
동경전문학교와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
1903년 귀국, 대한제국 관료로 임용되어 탁지부 주사,
군부와 탁지부의 번역관 등을 거쳐
탁지부 서기관, 주임관을 역임.
1910년 10월 1일 한일 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토지조사국 감사담당관
1913년 진주군수, 이후 동래군수
1921년 충청남도청 참여관
1924년 경상북도청 참여관
1926년 충청북도도지사, 황해도도지사 등을 역임
1933년 중추원 참의에 임명,
이듬해 재선된 뒤 중추원 참의에 재선.
해방 후에는 정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곡자의 대표이사 등으로 활동.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한 뒤, 조사받고 풀려났다.
이후 기업 활동과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인 도지사 경력자 42명 가운데
배경이 되는 엘리트 출신 고위관료 8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예에 능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나 수상하였다.
본관은 청주이고 자(字)는 덕중(德仲), 호는 온재(溫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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