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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액자 50.5 *27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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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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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50.5 * 27 cm
작품 42 * 18.5 cm
* 유리위로 찍은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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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朴壽根, 1914년 2월 21일 ~ 1965년 5월 6일)은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號)는 미석(美石)이다. 회백색을 주로 쓰면서, 단조로우나 한국적인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다루었다.
작품으로 「나무」, 「복숭아」,「노인과 소녀」,「빨래터」등이 있으며,[3]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되어 있다.[4]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 출생. 강원도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다. 1932년 제11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등장하였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 미술협회전람회에서 입상하였다.[3] 1958년 이후 미국 월드 하우스 화랑·조선일보사 초대전·마닐라 국제전 등에 출품하는 등 국내외 미술전에 여러 차례 참가하였다. 1959년 제8회 국전 추천 작가가 되었고,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이 되었다. 그는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면서도 한국적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충실하게 다루었고,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1910년대
1914년 -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양구면(楊口面) 정림리(井林里)에서 2월 21일(음력 1월 28일) 태어남
1918년(4세) - 마을 글방에 다니며 한문을 배우기 시작함
♦ 1920년대
1921년(7세) - 양구 공립 보통학교 입학
1927년(13세) - 양구 공립 보통학교 졸업.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 못 함
♦ 1930년대
1932년(18세) -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처음으로 입선 '봄이 오다'이후 1943년까지 아홉 차례 입선함
1935년(21세) -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춘천으로 가 그림 공부를 함
1936년(22세) - 제 15회 [선전]에‘일하는 여인’수채화 출품으로 두 번째 입선함
1937년(23세) - 제 16회 [선전]에‘봄’으로 세 번째 입선함
1938년(24세) - 제 17회 [선전]에‘농가의 여인’입선함
1939년(25세) - 제 18회 [선전]에‘여일(麗日)’입선함
♦ 1940년대
1940년(26세) - 2월 10일 강원도 금성 감리교회에서 김복순과 결혼, 5월 평양으로 가 공무원(평안남도 도청 사회과의 서기)으로 일함
1941년(27세) - 제 20회 [선전]에‘맷돌질하는 여인 입선함
1942년(28세) - 제 21회 [선전]에‘모자(母子)’입선함
1943년(29세) - 제 22회 [선전]에‘실을 뽑는 여인’입선함
1945년(31세) - 815광복 후 강원도 금성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침
♦ 1950년대
1950년(36세) - 6.25전쟁 후 남쪽으로 내려옴
1951년(37세) - 전라도 군산에서 막노동을 하며 그림을 그림
1952년(38세) -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을 시작함
1953년(39세) - 제 2회 대한민국미술전 서양화부에 ‘우물가(집)’이 특선,‘노상에서’이 입선, 창신동에 집을 마련함
1954년(40세) - 제 3회 국전에서 ‘풍경’과 ‘절구’가 입상, 이어 제 4회, 5회 국전에서도 입선함
1957년(43세) - 제 6회 국전에서 ‘세 여인’이 낙선함
1959년(45세) - 제 8회 국전의 추천작가로 ‘앉아 있는 여인’을 냄, 이어 9회 10회 국전에 작품을 냄
♦ 1960년대
1962년(48세) - 한일국제교류전에 ‘나물’을 냄, 제 11회 국전에서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소’와 ‘유동’을 냄,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 도서관에서 박수근 특별 초대전이 열림
1963년(49세) - 왼쪽 눈 실명, 전농동으로 이사함.
1964년(50세) - 제 14회 국전 추천작가로‘할아버지와 손자’를 냄
1965년(51세) - 4월 초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해 5월 5일에 퇴원함
5월 6일 새벽 1시 전농동 집에서 별세, 경기도 포천군 소홀면 동신교회 묘지에 안장. 제 14회 [국전]에 유작 ‘유동(遊童)’ 전시. 10월 6일~ 10일 소공동 중앙공보관에서 유작전 79점의 작품이 전시됨.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낙들과 아이들을 그린 그의 그림 〈노상〉은 2006년 12월 14일에 열린 케이 옥션 사의 경매에서 10억 4천만 원이라는 대한민국 최고가 기록을 세우며 팔렸다.[5] 그러나 2007년 3월, 그의 그림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에 낙찰되어 그 기록을 경신하였고,[6] 다시 동년 5월에 그의 작품 〈빨래터〉가 45억 2천만원에 낙찰되어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다.[7]
그러나 작품 〈빨래터〉를 두고 서울옥션에서 구체적인 감정결과를 공개하지 않아서 2007년 12월 미술 잡지 〈아트레이드〉에서 그의 작품의 위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를 문제삼아 서울옥션은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30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였다. 2009년 1심 결과 "위작은 아니지만 정당한 언론활동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로 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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