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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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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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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가로 48,5 높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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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여흥/민치완(閔致完)1838∼1911
1838년(헌종 4)∼1911년. 조선 말기 유학자. 자는 군현(君賢)이고, 호는 지강(芝岡)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경상남도 산청(山淸) 출신이다.
증조부는 민일(閔鎰)이고 조부는 민이주(閔以珠)이다. 부친은 장사랑(將仕郞), 민재규(閔在圭)이며, 어머니 남원양씨(南原梁氏)는 양천민(梁天民)의 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학행(學行)으로 효문전참봉(孝文殿參奉)에 임명되었고, 그 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의주부관찰사(義州府觀察使) 등을 지냈다.
만년에는 지강정사(芝岡亭舍)를 짓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1887년(고종 24) 4월 13일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사에는 그의 성품이 흉악하고 교활하므로 외딴 섬에 유배시킨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민치완은 우연한 계기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만나게 되었는데, 정세가 바뀔 것을 고려하여 큰 시비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이로 인하여 1874년(고종 11)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잃고 그 문객들이 모두 화를 당할 때도 민치완은 당분간 화를 면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하던 민비에 의하여 결국 유배되었다고 적혀 있다.
저서로 시문집인 『지강문집(芝岡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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