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22×36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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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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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장 무
1800년 刊/ 회산황씨세보(檜山黃氏世譜)/ 목판본
1. 서문 및 구보서, 발문
간행 연도/ 발문 기준, 1800년(정조 24년, 庚申) 추정
주요 인물/목만중(睦萬中, 한성부우윤), 황대중(黃大中) 외 문중 인사
2. 자료의 배경과 서지적 특징
본 매물은 조선 후기 정조 연간에 간행된 회산 황씨(檜山黃氏) 가문의 족보 중 핵심 기록인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을 포함한다.
단순한 혈통의 나열을 넘어, 원나라에서 귀화한 시조의 기원부터 전란으로 흩어진 문헌을 모아 족보를 완성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그리고 당대 명문가와의 교류史가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응축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의 작성 시기가 명확하고 판각 상태가 유려하여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수보(修譜)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3. 핵심 내용/ 반세기에 걸친 가문의 숙원과 결실
① 시조의 도래와 흩어진 혈맥의 한(恨)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1800년의 발문에는 가문의 웅장한 기원이 담겨 있다.
본래 원나라 순제 때의 인물이었던 시조 공희공(恭僖公, 황석기)이 고려로 건너와 홍건적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회산군에 봉해졌음을 명시하여,
무장(武將) 가문으로서의 긍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영조 34년(1758년)에 쓰인 옛 서문(구보서)과 발문에는 뼈아픈 역사가 교차한다.
거듭된 병화(兵火)로 문헌이 불타고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져 조상의 사적조차 잊혀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핏줄의 근원을 찾아 하나로 묶어내고자 했던 문중의 절박한 사명감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② 1799년, 명문가의 붓끝으로 가문의 위상을 세우다
선조들의 염원은 40여 년이 흐른 1799년(정조 23년) 가을, 새로운 족보 편찬으로 구체화된다.
회산 황씨 가문은 단순한 문중 내부의 결속을 넘어 대외적인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대 고위 관료인 한성부우윤 목만중(사천 목씨)에게 서문을 의뢰한다.
목만중은 회산 황씨의 핵심 조상인 좌윤공이 자신의 가문과 맺은 깊은 혼맥을 언급하며 "사천 황씨 또한 우리 목씨에서 나왔다"고 선언한다.
이는 당대 중앙 정계의 주요 가문과 회산 황씨가 혈연적으로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③ 1800년의 발문, 마침내 방점을 찍다
기미년(1799년) 여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족보 편찬 작업은 해를 넘겨 1800년(정조 24년) 봄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
발문에는 실무를 주도했던 후손 대중(大中), 상채(尙彩), 한오(漢五) 세 사람이 상순과 하순에 걸쳐 릴레이 형식으로 글을 덧붙이며 족보 완성을 자축하는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4. 사료적 가치 및 총평
본 자료는 '1758년의 절박한 다짐(구보서)'이 '1799년 명망가의 보증(신보서문)'을 거쳐 '1800년 후손들의 눈물겨운 완성(발문)'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족보 편찬의 완벽한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문중의 뿌리를 지키려는 지식인들의 치열한 기록 정신과, 족보 서문을 통해 가문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증명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 사대부 사회의 단면을 완벽하게 실증하는 문헌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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