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之卽祚三十二年甲午式年司馬榜目
- 표제/책임표시사항 : 上之卽祚三十二年甲午式年司馬榜目
- 판사항 : 金屬活字本(整理字)
- 발행사항 : [刊寫地未詳]: 內閣, 光武6(1902)
- 형태사항 : 3卷3冊: 四周單邊 半郭 26.1 x 17.0 cm. 11行20字 註雙行, 上2葉花紋魚尾; 35.5 x 22.6 cm
- 주기사항 :
刊記: 壬寅(1902)仲秋內閣活印
고종 31년(1894) 갑오년 식년시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의 방목(榜目)이다. 생원·진사시는 ‘사마시(司馬試)’라고도 하며 방목은 보통 ‘사마방목(司馬榜目)’이라고 하였다. 본 방목은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기 직전에 시행된 시행된 시험의 방목이다. 본 시험은 식년 전해인 고종 30년 8월 20일·22일 초시(初試)를 시행하고, 고종 31년 2월 20일·22일 회시(會試)를 시행하였으며, 2월 26일 출방(出榜)하고 4월 9일 손시(巽時)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방방(放榜)하였다. 식년 전해 가을에 초시를 치르고, 식년 봄에 회시를 치르도록 한 식년시 시행 규정을 준수하였다. 방목은 8년 후인 광무 6년(1902) 8월에 내각(內閣)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방목은 전교(傳敎), 은문(恩門), 방목(榜目),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방목이 은문, 방목, 부록으로 된 것에 비하여 전교를 첫머리에 추가하였는데, 이것은 고종대 방목의 특징적인 형식이다.
전교(傳敎)는 본 시험의 시행과 관련된 전교를 시간 순으로 등서한 것이다. 주로 회시 응시자 중 특정 부류를 정원 외로 방목(榜目)에 직부(直赴)하도록 하교한 내용이다. 먼저 회시 초장(初場)이 시행된 2월 20일에는 시원임(時原任) 사부(師傅)·빈객(賓客), 춘방(春坊, 세자시강원) 및 계방(桂坊, 세자익위사), 회연소(會宴所) 관원 등의 아들·사위·동생·조카 등을 방목에 직부하도록 하였다. 다음날인 2월 21에는 진작재신(進爵宰臣)의 아들·사위·동생·조카, 복온공주(福溫公主)·효녕대군(孝寧大君)·김굉필(金宏弼)의 사손(祀孫) 또는 종손(宗孫), 왕세자(뒤의 純宗)와 동갑인 21세인 자, 독리(督理) 이면상(李冕相)의 아들 등도 합격시키고 1소와 2소에서 각 50명을 더 선발하도록 하였다. 이어 3월 29일에는 초시 합격자 중 80세 이상인 자도 방목에 직부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전체 합격자는 크게 늘어났다.
은문(恩門)은 2차 시험인 회시의 시관 명단이다. 회시는 1소와 2소로 나뉘어 시행되는데, 시소(試所)마다 시관(試官) 5명과 감시관(監試官)인 사헌부감찰 1명을 파견하였다. 성균관 명륜당에 설치된 1소 시관은 지중추부사 김학진(金鶴鎭), 행호군 조정희(趙定熙) 등이며, 성균관 비천당에 설치된 2소 시관은 지춘추관사 이헌(李헌), 행승정원좌승지 이위(李暐) 등이다.
방목(榜目)은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의 합격자 명단이다. 생원·진사는 각 100명씩을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본 시험은 왕명으로 100명을 더 선발하고 방목에 직부하게 한 경우도 많아 합격자가 생원 278명, 진사 1055명에 이르렀다. 이 수는 최다일뿐 아니라 특히 진사(進士)는 직전에 시행된 시험에 비해서도 거의 배나 된다. 이처럼 정원 외에 합격자가 늘어난 상황은 그만큼 생원·진사시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생원시 장원은 1소에서 의(疑)로 합격한 태인 출신의 동몽(童蒙) 김윤혁(金潤爀)이며, 진사시 장원은 1소에서 부(賦)로 합격한 목천 출신의 유학 김주연(金周演)이다.
합격자는 개인별로 직역, 성명, 본관, 거주지 등 신상정보와 가족사항, 응시 시소 및 과목을 기록하였고, 두주에는 초시를 거치지 않고 합제(合製), 승보(陞補), 도회(都會) 출신으로 회시에 바로 응시한 이력을 기재하였다. 방목의 끝에는 유사(有司)인 송흥순(宋興淳) 등 30명의 명단이 있다. 이들은 본 방(榜) 출신으로 방목을 간행할 때 교정과 감역을 담당하였다.
부록에는 방임(榜任), 연벽(聯璧)·양시(兩試), 초시(初試)·회시(會試), 생진경외입격수(生進京外入格數)를 수록하였다.
방임(榜任)은 합격자 발표 후 방회(榜會)를 개최할 때 합격자 중에서 선임한 유사로, 방중색장(榜中色掌), 은문색장(恩門色掌)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때에는 방회를 시행하는 관행이 사라져 방임도 항목만 있고 명단은 없다. 연벽(聯璧)은 형제가 합격한 경우로 박승일(朴勝一)·승만(勝萬) 형제 등 17형제 명이며, 양시(兩試)는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경우로 주윤호(朱潤鎬) 1명이다.
초시·회시는 시험 시행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초시는 시험 시행 일자, 경향(京鄕) 각 시소(試所)의 시관 및 과목별 장원 등을 수록하였으며, 서울에서 시행된 한성시 2개 시소는 시제(試題)도 기록하였다. 회시는 초장·종장·출방·방방의 시행 일자와 시소별 시제만 기록하였다.
생진경외입격수(生進京外入格數)는 도별로 생원·진사 합격인원을 통계하여 정리한 것이다. 생원·진사를 합쳐 충청도 212명, 경상도 200명, 평안도 156명, 서울 151명, 전라도 142명, 경기도 131명 등의 순이다. 서울보다 충청도·경상도·평안도 등의 합격자가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것은 고종대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마지막에 간기(刊記)가 기재되어 있다. 생원·진사시 및 사마방목 일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경자식년사마방목(庚子式年司馬榜目)』 해제 참조. (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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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이미지 사진 올려놓앗으니 충분히 관찰하여 신중한 입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