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2월 1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원래 어머니 한윤명(韓潤明)
[17]이 지어준 아호 '운포(雲圃)'를 사용하다가 해방 직후 일제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로 囗를 떼어버리고 '운보(雲甫)'로 바꿨다.
1920년 승동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되어 수년간 휴학했다가 복학했다. 이때부터 김기창은 평생 동안 청각장애인으로 살게 되었다. 고열에 시달릴 때 민간요법으로 외할머니 이정진(李貞鎭)이 해 준
인삼을 먹고 더 열이 올라 결국 귀가 멀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은 김기창 본인이 쓴 수필에 잘 나와 있다. '보약이라고 해서 외할머니가 인삼을 달여온 것을 먹고 나의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열에 인삼이 나쁘다는 사실이라든지, 체질에 따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라고. 어린 나이에 실청(失聽)하면서 말하는 법도 잊어버렸으나 나중에 다시 배워
구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청각장애인 특유의 어눌한 발음이긴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18]어머니 한윤명 여사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손수 한글, 산수를 가르쳤고 김기창은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기억이 있어 쉽게 이해했다.
[19] 또한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교실에서 혼자 교과서에 낙서를 하며 지냈다.
1930년 보통학교 졸업 후 어머니의 주선으로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낙청헌(洛淸軒)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낙청헌에 입문한지 6개월 만에 스승 김은호의 영향과 총애를 받아
1931년 '제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판상도무(板上跳舞)
[20]'를 출품해 입선했다. 아버지 김승환은 귀머거리지만 아들이 허우대가 크다고 해서 목수를 시키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림을 배우게 했다.
당시 스승이었던 김은호는
안중식과
조석진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 교수로 있던
유키 소메이에게 수학하면서 섬세한 묘사에 기초한 일본화식 채색화법을 익혔으며,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해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다.
낙청헌에는 김은호를 사사하고자 김기창 외에
김인승,
장우성,
이규옥,
https://ko.wikipedia.org/wiki/이유태_(1916년)[[이유태,
조중현,
백윤문,
이석호,
이규옥 한유동,
장운봉 등과 동문수학했다. 이들은 1936년 1월 미술단체인
후소회를 창립하고, 10월 제1회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조선화단에서 유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