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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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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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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스님 사해일가 서해 현판 입니다
四海一家 뜻 온 세상이 한 가족이라는 뜻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한 가족처럼 친밀하게 화합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 합니다
액자크기:154cm*46.5cm
작품크기:129cm*34cm
○ … 석주스님은 1909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1923년 부처님 제자가 됐다. 범어사에서 이산(梨山)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일봉(一鳳)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수지했다. 범어사에서 6년간의 행자생활을 마친 스님은 1933년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뒤 전국의 주요 선방에서 화두를 들었다.
금강산 마하연에 머물 무렵의 주지스님은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낸 석우(石友)스님이었다. 엄격한 선방규칙에 따라 사분정진을 했던 시절이다. 묘향산 보현사에서는 효봉(조계종 종정)ㆍ혜암(수덕사 조실)스님 등과 함께 했다. 193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는 한암스님 회상에서 안거를 지냈다. 한암스님에게 ‘마삼근(痲三斤)’이라는 화두를 받았다. 스님은 출가한 후 수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을 이때로 꼽았다. “처음 안거를 오대산에서 났는데, 어렵게 정진하고 정진했던 시절입니다. 그때 같이 수행했던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절 뼈를 깎는 정진과 수행은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해요. 좀체 잊을 수가 없지요.”(석주스님)
하지만 스님은 후학들이나 재가불자들에게 설법을 할 때면 “그래도 나는 아직 공부를 성취 못했어요”라며, 공부의 깊이를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스님의 순박한 미소와 겸손한 말씀은 상(相)을 내지 않고 살았던 스님의 향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 … 일제강점기 스님은 선학원에 머물며 만해스님을 비롯한 민족의 선각자들과 의기를 투합했다. 당시의 경험은 해방직후 스님이 왜색불교 청산과 자주독립국가 건설운동에 앞장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님은 1946년 경봉ㆍ용담ㆍ대의ㆍ석기 스님 등 출가자와 조명기 박사ㆍ이구열ㆍ장상곤씨 등 청년들과 함께 불교혁신동맹을 조직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부터는 정화불사에 적극 나섰다. 1953년 10월 효봉ㆍ동산ㆍ금오ㆍ청담ㆍ자운 스님 등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을 위한 촉구 결의를 선학원에서 했다. 이듬해 5월30일에는 대의ㆍ종익ㆍ재열 스님들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1958년 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로 취임했다. 1959년 범어사에서 대덕법계를 품수한 스님은 1960년 5월20일 조계종 제16회 임시종회에서 불교정화 사태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으로 선임됐다. 1961년에는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 …1961년 5월 운허스님과 함께 동국역경원 전신인 법보원을 설립했다. 〈열반경〉 〈법화경〉 〈육조단경〉 등을 번역 출판했고, 〈부모은중경〉 〈목련경〉 〈우란분경〉은 직접 번역했다.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된 후 원장 운허스님과 함께 역경불사의 원력을 실천했다. 1995년부터는 동국역경원 후원회장으로 있으면서 한글대장경 완간불사를 2002년 9월 회향했다.
○ … 스님은 종단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손수 구종(救宗)의 대열 맨앞에 섰다. 종단이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면 총무원장을 맡아 난국을 수습했다. 1971년(제8대), 1978년(제15대), 1984년(제23대)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총무원장을 지냈다. 종단을 수습하고 나면 스님은 미련 없이 원장직을 내놓았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종정으로 추대된 월하스님에 이어 개혁회의 의장 소임을 맡았다. 스님은 개혁회의 의장으로 추대된 후 “이번 기회에 개혁정신이 이어지도록 완전한 개혁을 이루어 안정적으로 종단이 운영돼야 한다”면서 △재정공개 △종단목적불사 신속추진 △인사위원회 설치 등을 과제로 밝혔다. 특히 스님은 “불사(佛事)심의위원회와 불서(佛書)심의위원회를 두어 삼보정재가 헛되이 쓰이거나, 정법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스님은 어린이 청소년 포교와 도제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65년대 서울 칠보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창립했다. 또 스님은 평소 “교육만 잘되면 전법ㆍ역경 모든 것이 잘된다”며 도제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80년 중앙승가대 초대학장으로, 1988년에는 명예학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스님은 말년에 칠보사 조실과 봉은사 조실로 있으면서, 입적하기 직전까지 불자들을 지도했다.
○ …스님은 “야운(野雲)스님이 읊은 게송을 아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이 게송을 들려주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인아산붕처(人我山崩處) 무위도자성(無爲道自成)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 만복자귀의(萬福自歸依)” 스님은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를 바로 세워 도를 이루고, 누구에게나 하심 한다면 만복이 스스로 찾아듭니다. 하심은 매우 중요한 불자의 실천도리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품이며 상대방에 대한 극진한 예우입니다.”
○ … 석주스님은 평소 “부처님 가르침대로 믿고 수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따로 할말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정직한 마음으로 살면서 선행(善行)을 하면 현세(現世)나 미래세(未來世)나 모든 업이 소멸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범룡스님은 석주스님에 대해 “천하를 사랑하는 이”라고 했다. 관응스님은 “안과 밖이 같은 분”이라고 했으며, 도원스님은 “권위의식이나 사심이 전혀 없는 어른”이라고 했다. 경봉스님은 “그 마음이 솔직하고, 관찰력이 빠르고 바른말을 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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