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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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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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석주 이상룡과 류인식·김형칠 등이 임하면 내앞에 협동학교를 설립할 때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뒤 스스로 봉양서숙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개척했다.
이후 안동지역 3·1운동은 내앞의 협동학교와 봉양서숙, 하회의 동화학교와 도산의 보문의숙 등의 4개 학교가 주체가 되어 이끌었다.
3월 18일 안동에서 봉양서숙 제자를 비롯해 송연식·송장식 등 친지들과 함께 만세 대열의 선두에 섰으나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팔다리가 꺾이고 뼈가 드러나는 고문을 당하는 가운데 시위 이유를 묻자 “밤이 깊어 새벽이 찾아오면 우는 것은 닭의 생리”라고 답했다고 한다.
송기식은 선동죄로 2년형을 받아 안동과 대구를 거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옥중생활을 하던 송기식은 ‘체포되어 안동 옥사에 갇혔을 때 동지들에게 보이다’라는 시를 지어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송기식(宋基植. 1878~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공필이고, 호는 해창(海窓)이다. 본관은 진천(鎭川)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송순호(宋淳昊)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를 당하자 이상룡(李相龍)과 함께 만주로 망명을 갔다가 귀국하였다. 1913년 세워진 봉양서숙(鳳陽書塾)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안동면(安東面) 2차 만세운동을 이끌었고, 이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을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옥 후 인곡서당(麟谷書堂)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저서로 『국문사서(國文四書)』‧『유교유신론(儒敎維新論)』‧『한문훈몽(漢文訓蒙)』‧『홍범시의(洪範時義)』 등이 있으며, 유고로 『해창문집(海窓文集)』 등이 전한다.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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