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번 입선하고 고창, 김제, 남원군수 등을 지낸 진재
배석린으로, 의재
허백련이나 이당
김은호와 친분이 있었다. 문인화를 취미로 그렸는데도 선전에 여러 번 입선을 해서 딸에게 종종 가르쳐 준 모양이다.
그런데 소문이 나서 아버지의 친구인 의재
허백련이 본인의 집에 놀러 와 아버지와 대화를 하던 도중, 5살 난 어린 배정례 화백을 불러 자신을 그리게 했다. 그림을 본 허백련은 그 모습이 자신과 똑같아 감탄한 허 화백이
"너 왜 여자로 태어났느냐, 남자였으면 우리와 같은 길을 갔을 텐데." 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세 때
메이지대학 법학과 학생이던
박기배와 혼인하여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때 일본을 왕래하던 이당
김은호의 눈에 들었던 데다 문인화를 그리던 그녀의 아버지의 요청으로 그의 첫 여성제자가 되었다. 일본 유학 중에는 당시 미모가 뛰어나 남학생들이 이미 결혼한 여성인지도 모르고 대시를 많이 하였고,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낙청헌으로 들어가 사랑채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김은호를 사사하였는데, 낙청헌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학생들과 장난을 많이치고 놀아 김은호의 모친
[4]이 회초리를 들고 가정부인이 왜 남학생들과 장난을 치냐며 때렸었다고 한다.
그렇게 선전에 여러 번 입선한 이후 광복 이후에는 개인전을 활발하게 개최하였는데 1954년 화신백화점 화랑, 1958년 동화백화점 화랑, 1962년 국립도서관, 1973년 부산화랑, 1976년과 1979년 해송화랑, 1994년 운현궁미술관 등 총 16회에 달하였다. 1947년혜화동에서 여자동양화연구소를 경영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러다 남편 박기배 전 의원의 별세 이후에는 시댁이 있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생활하다가 1992년 다시 의정부로 이주하여 활동하였으며 작고 후 기념관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