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22cm x 3.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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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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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유기장 기능보유자인 이봉주 선생은 1926년에 납청에서 약 8km 떨어진 평북 정주군 덕언면에서 모친이 놋성기 장사로 생계를 이었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세 때부터 납청의 점주 김용도 선생의 집에 취직을 하여 유기 제작일을 접하게 되었지만 기술은 배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청년들을 전쟁터로 마구 내몰던 시절 열일곱 살이던 선생은 군대에 끌려가기엔 어렸지만 취직하지 않으면 강제노역에 붙들려가야 하기에 아연광산에 취직해 직원 숙소에 불 때는 일을 맡았다. 금속과 불, 이 두 가지도 선생과 인연이 깊다. 결혼을 위해 고향에 돌아온 선생은 농사를 짓던 중 광복을 맞았다. 잇단 흉년과 과도한 현물세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항의를 모의하다 북한 정권에 끌려가 고문 휴유증으로 사망하고 선생은 첫 딸을 잃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 선생은 1948년 겨울 송아지 판 돈 5,000원을 들고 월남을 결심하게 된다. 아내는 어머니가 말리는 바람에 남게 됐고 그것으로 아내와의 인연도 끊어지고 만다. 여려 소식을 통해 훗날 들은 바에 의하면 아내는 평생 고아를 돌보며 살다가 2008년 여든둘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납청 출신이지만 고향에선 정작 방짜유기 제작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해방 후 22세 때인 1948년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납청 방짜유기 공장을 크게 하던 탁창여 선생의 양대공장에 입사하여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탁창여 선생은 아내의 이모부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방짜 유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선생은 탁창여 선생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았다. 지금도 문경에 있는 선생의 공장 마당 가운데에는 탁 선생의 공적비가 서 있다. 이 공장에는 모두 납청출신의 유기 장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능을 익혀 2년만에 점주가 되었고 전쟁이 나자 군에 입대하고 제대 후 다시 공장에 들어가 점주로 일을 하였다.
1957년에는 구로동에 자신이 직접 ‘평부양대유기공장’을 설립하여 대장겸 점주 그리고 경영까지 하여 생산 기술자인 동시에 판매자까지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생활문화가 변하면서 연탄을 집집마다 사용하게 되자 연탄가스에 쉽게 변색되는 유기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선생의 공장도 문을 닫고 만다. 그 뒤 노동판에 나가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는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다시 1960년말 공방을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때는 잘 팔리지 않는 그릇 대신 징이나 꽹과리와 같은 악기를 주로 만들었다. 마침 대학가에서 농악이 붐을 일으키던 때라 잘 팔려나갔다.
선생은 1978년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으로 이주하여 진유공사를 세워 공장 시설을 개량하고 계속 양대유기를 제작하였다. 198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1983년에 국가무형유산 유기장의 방짜유기 부문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반상기를 방짜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편리한 스테인리스 스틸과 플라스틱에 밀려났던 놋그릇은 시절이 바뀌면서 새 국면을 맞은 것이다. 인체에 나쁜 성분을 만나면 변색되는 신비한 효능이 알려지고 언론에 선생의 방짜기술이 소개되면서 방짜그릇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갔다.
1926년 일제 식민지하에서 태어난 선생은 광복의 혼란기에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었고, 전쟁과 근대화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었다. 1948년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도착하여 겨우 고무신 한 켤레 살 돈밖에 없던 스물 두 살 청년이 50여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3년에는 쇳농이 튀어 한쪽 눈을 잃었고, 2008년에는 담낭에 탈이 생겨 세차례나 수술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평생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본인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1994년에는 안산 시화공단으로 확장이전하여 각종 방짜유기를 생산하였다. 이후 경북 문경시에 ‘납청방짜유기전수관’을 짓고 후진양성과 작품활동에 정진하여 왔다. 이 주변은 고향인 납청처럼 소나무 숲이 많고, 논은 적어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청년들에게 유기 제작 기술을 가르쳐 유기가 산촌의 주된 사업으로 성장하게 되면, 결국 납청마을과 같이 지역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이곳을 유기마을로 키워가고 있다.
소리가 맑고 청아함. 작품성 형태미 장식성 수집용으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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