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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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일본 | 연대 | 1945년~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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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쇼날(National) 국민 2호형 진공관 라디오 수신기 - 일제강점기 격동의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박물관급 최고 등급 역사적 사료 제품
1.설명 - 우리 민족의 가장 엄혹하고 치열했던 가슴 아픈 연대기이자 격동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일제강점기 후기, 한반도의 안방 중심에서 모진 풍파를 소리 없이 지켜보았던 유서 깊은 유물, 송하무선주식회사(松下無線株式会社, 마츠시타 무선 주식회사)에서 제조한 '국민 2호형(國民2號型) 나쇼날 수신기' 제품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근현대 생활사 및 통신 유물실 전시 코너실에서나 그 역사적 가치를 고증 자료로서 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역사적 사료이며, 전문 수집가분들의 컬렉션을 완벽하게 매듭지을 초희귀 소장품입니다.
당시 라디오는 단순한 음향 가전을 넘어 엄격한 통제와 규격 속에서 정보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던 지극히 귀한 문물의 중심체였습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제2차 세계대전 전시 체제 하에 정보 전파와 통제를 목적으로 보급되었던 국정 표준 '국민형 수신기'는, 광복의 기쁨과 뒤이은 전란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대부분 폐기되거나 유실되어 현재 원형태를 간직한 개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문 희소성을 자랑합니다. 본 제품은 전면 좌측의 세 개 수직 바 그릴과 전면 우측의 클래식한 곡선형 주파수 다이얼 창이 어우러져 당대 고전 라디오 특유의 장엄한 조형미와 시대를 초월한 아우라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제품 후면 안쪽에 온전히 잔존해 있는 오리지널 금속 명판에는 '國民2號型 ナショナル受信機(국민 2호형 나쇼날 수신기)'라는 모델명과 함께 '松下無線株式会社(송하무선주식회사)', 그리고 초기 조립 공정의 고유 일련번호인 'NO. 590'이 선명히 각인되어 있어 제품의 확실한 진위성과 가치를 명확하게 고증해 줍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아득한 시간의 강을 건너 우리 앞에 기적처럼 잔존해 준 단 한 점의 마스터피스이며, 근현대사 유물 컬렉터분들의 자부심을 채워줄 최고의 소장품이자 품격 있는 공간을 장식할 하이엔드 오리지널 디스플레이 제품으로자신 있게 선보입니다.
2. 상태 - 작동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크기 - 가로 38Cm X 세로 17Cm X 높이 24Cm
조선방송협회 라듸오 청취료 영수증 동봉
3. 확인 사항 - 사진으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세월의 흔적이나 내부 부품 노후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제품의 특성상 이로 인한 반품은 불가 하오니 깨짐, 찍힘, 금간 것, 흠집, 변색, 오염 사진 꼼꼼히 확인 또 확인하시고 신중한 입찰 부탁드립니다.
4. 완충 포장, 택배 안전 배송 (배송 중 손상이 없도록 에어캡으로 견고하게 다중 포장하여 발송해 드립니다.)
5. 일제강점기 라듸오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은 경성방송국(JODK)이 개국한 1927년부터 1945년 광복 직전까지 전쟁과 제도적 변화(2중 방송 실시)에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허가를 받고 매달 청취료를 내는 ‘등록제(청취계약)’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공식 기록인 라디오 등록 대수를 통해 그 보급 추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 대수 추이
초기에는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값비싼 기계 가격 때문에 보급이 매우 더디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 1927년 (개국 초기) | 약 1,440대 ~ 5,260대 | 개국 당시에는 1,440대에 불과. 라디오 한 대가 샐러리맨 연봉 수준으로 극소수 부유층만 소유.
| 1930년 | 10,226대 | 개국 3년 만에 공식 등록 1만 대 돌파.
| 1933년 | 32,058대 | 조선어 채널(제2방송) 독립 분리 실시로 한국인 수요 자극.
| 1937년 | 약 10만 대 돌파 | 중일전쟁 발발로 전시 뉴스 수요 폭증, 10만 대 선 돌파.
| 1940년 | 227,573대 | 보급 대수가 20만 대를 넘어섬. 가격이 10원대로 하락하여 대중화 시작.
|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 | 300,050대 | 일제강점기 역사상 최고치인 30만 대 기록.
보급 구조의 핵심 변화와 특징
① 초기 일본인 중심에서 한국인 확대로 초기 라디오는 철저히 조선 거주 일본인 중심이었습니다. 1927년 개국 직전 기준, 청취자의 약 80%가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20%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을 지나 1940년에 이르면 한국인 등록자가 약 9만 5천 명, 일본인이 약 9만 6천 명으로 비중이 거의 대등해질 만큼 한국인 사회에도 널리 보급됩니다.
② 라디오 보급을 폭발시킨 기점: '2중 방송'과 '전쟁' 라디오 보급 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조선어 방송 분리 (1933년): 초기에는 하나의 채널에서 일본어와 조선어를 섞어 방송했으나, 1933년부터 일본어 전용(제1방송)과 조선어 전용(제2방송)으로 나누면서 한국인 청취자가 급증했습니다.
일제의 침략 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전쟁 상황을 빠르게 전해 들으려는 대중의 심리와, 전시 체제 선전을 위해 보급형 라디오(국민형 수신기)를 적극적으로 보급하려 했던 일제의 정책이 맞물려 보급 대수가 수십만 대로 폭증했습니다.
③ 공동 청취 문화: "실제 청취자는 보급 대수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라디오 30만 대라는 수치는 현재 기준으로는 적어 보이지만, 실제 영향력은 훨씬 컸습니다. 기기가 귀했기 때문에 이발소, 상점, 식당 등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았고, 마을 구장(이장) 집에 모여 다 함께 뉴스를 듣는 '공동 청취'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줄 요약
일제강점기 라디오는 1927년 수천 대 수준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 조선어 방송 독립과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며 급성장하여 광복 직전에는 약 30만 대까지 보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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