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
| 제조국 | 일본 | 연대 | 1900년~1945년 |
|---|
[제목]: ELEPHON No. 10 오리지널 말굽 마그네틱 스피커 유닛 탑재 - 1930년대 JODK 경성방송국 조정실 양식 팔각형 데스크탑 모니터 스피커 박물관급 방송사 희귀 사료 제품
1.설명 -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반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었던 JODK(경성방송국) 시절, 스튜디오와 주조정실 내부에서 송출 음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치되던 고전 스피커의 조형적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ELEPHON No. 10 말굽 마그네틱 유닛 탑재 팔각 스피커’ 제품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근현대 생활사 전시장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방송통신 박물관 홈페이지의 초기 음향·방송 기기 사료관에서나 그 유서 깊은 형태미를 마주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역사적 자료이며, 전문 고전 음향 컬렉터분들의 수집 라인을 장엄하게 매듭지을 초희귀 소장품입니다.
이 제품은 아날로그 방송 여명기 당시 스튜디오 스태프와 기술진이 마이크를 타고 들어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당대 명창들의 음성을 정밀하게 가다듬던 역사의 현장 감성이 깊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단정한 팔각형 캐비닛 중심에 마름모꼴 크로스 프레임 그릴과 내부 패브릭 천이 어우러져 당대 클래식 음향 기기 특유의 압도적인 아우라와 기품을 발산합니다.
특히 제품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제품이 지닌 독보적인 사료적 가치가 완벽하게 입증됩니다. 내부 섀시 중앙에는 초기 음향 공학의 결정체이자 묵직한 U자형 강철 마그네틱 구조를 갖춘 ‘ELEPHON No. 10’ 오리지널 종이 라벨 명판 유닛이 제치 그대로 안착해 있습니다. 녹색 코팅이 가미된 대형 메탈 프레임과 직물 피복 리드선 단자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1930~40년대 음향 메커니즘의 원형을 완벽하게 고증해 줍니다. 묵직한 하단 받침대 프레임까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 품격 있는 서재나 레트로 감성의 공간을 단숨에 고풍스럽게 연출해 줄 하이엔드 디스플레이 전시 오브제 제품으로 자신 있게 추천해 드립니다.
2. 상태 - 작동 상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JODK 경성방송국 조정실에서 사용된 것과 유사한 방송 초기형 스피커입니다.
크기 - 가로 24Cm X 세로 17Cm X 높이 27Cm
3. 확인 사항 - 사진으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세월의 흔적이나 내부 부품 노후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제품의 특성상 이로 인한 반품은 불가 하오니 깨짐, 찍힘, 금간 것, 흠집, 변색, 오염 사진 꼼꼼히 확인 또 확인하시고 신중한 입찰 부탁드립니다.
4. 완충 포장, 택배 안전 배송 (배송 중 손상이 없도록 에어캡으로 견고하게 다중 포장하여 발송해 드립니다.)
5. 일제강점기 라듸오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은 경성방송국(JODK)이 개국한 1927년부터 1945년 광복 직전까지 전쟁과 제도적 변화(2중 방송 실시)에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허가를 받고 매달 청취료를 내는 ‘등록제(청취계약)’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공식 기록인 라디오 등록 대수를 통해 그 보급 추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 대수 추이
초기에는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값비싼 기계 가격 때문에 보급이 매우 더디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 1927년 (개국 초기) | 약 1,440대 ~ 5,260대 | 개국 당시에는 1,440대에 불과. 라디오 한 대가 샐러리맨 연봉 수준으로 극소수 부유층만 소유.
| 1930년 | 10,226대 | 개국 3년 만에 공식 등록 1만 대 돌파.
| 1933년 | 32,058대 | 조선어 채널(제2방송) 독립 분리 실시로 한국인 수요 자극.
| 1937년 | 약 10만 대 돌파 | 중일전쟁 발발로 전시 뉴스 수요 폭증, 10만 대 선 돌파.
| 1940년 | 227,573대 | 보급 대수가 20만 대를 넘어섬. 가격이 10원대로 하락하여 대중화 시작.
|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 | 300,050대 | 일제강점기 역사상 최고치인 30만 대 기록.
보급 구조의 핵심 변화와 특징
① 초기 일본인 중심에서 한국인 확대로 초기 라디오는 철저히 조선 거주 일본인 중심이었습니다. 1927년 개국 직전 기준, 청취자의 약 80%가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20%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을 지나 1940년에 이르면 한국인 등록자가 약 9만 5천 명, 일본인이 약 9만 6천 명으로 비중이 거의 대등해질 만큼 한국인 사회에도 널리 보급됩니다.
② 라디오 보급을 폭발시킨 기점: '2중 방송'과 '전쟁' 라디오 보급 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조선어 방송 분리 (1933년): 초기에는 하나의 채널에서 일본어와 조선어를 섞어 방송했으나, 1933년부터 일본어 전용(제1방송)과 조선어 전용(제2방송)으로 나누면서 한국인 청취자가 급증했습니다.
일제의 침략 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전쟁 상황을 빠르게 전해 들으려는 대중의 심리와, 전시 체제 선전을 위해 보급형 라디오(국민형 수신기)를 적극적으로 보급하려 했던 일제의 정책이 맞물려 보급 대수가 수십만 대로 폭증했습니다.
③ 공동 청취 문화: "실제 청취자는 보급 대수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라디오 30만 대라는 수치는 현재 기준으로는 적어 보이지만, 실제 영향력은 훨씬 컸습니다. 기기가 귀했기 때문에 이발소, 상점, 식당 등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았고, 마을 구장(이장) 집에 모여 다 함께 뉴스를 듣는 '공동 청취'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줄 요약
일제강점기 라디오는 1927년 수천 대 수준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 조선어 방송 독립과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며 급성장하여 광복 직전에는 약 30만 대까지 보급되었습니다.










영수증발행 : 온라인현금영수증(소득공제용 / 지출증빙용)
영수증신청 : 수령확인시에 개인소득공제용 또는 사업자회원님의 지출증빙용(세금계산서대체)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판매자 ID | moon12013 | 사업자구분 | 간이과세자 | 대표자 | 오** |
|---|---|---|---|---|---|
| 상호 | 에**** | 사업자등록번호 | 385******* | 통신판매업신고 | |
| 전화번호 | 010********** | mo***************** | |||
| 영업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동구 뚝섬로15길 5 (성수동2가, 정안맨숀8차) ******* | ||||
코베이옥션은 구매안전서비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