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51,5 x 2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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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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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조은 장지에 명필서체로 묵서정서한 조선문신이자 독립운동가 김가진선생의 명필작품
두터운 선지에 배접되어 있어 충분히 물에담긴후 정성스럽게 떼어난 희귀 김가진선생의 명필작품
상태 사진참조 바라며 아무흠없이 아주최상 입니다
김가진(金嘉鎭, 1846년 음력 1월 29일 ~ 1922년 7월 4일)은 조선말기의 문신이며 조선귀족으로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동농(東農), 본관은 안동. 병자호란때 강화성에서 순절한 문충공 선원 김상용의
11대손으로 이조참판 수북 김광현의 직계후손이며 예조판선 김응균의 아들이다
판사대신 주일공사(駐日公使)를 역임하고 갑오개혁때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했다.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했고, 대한협회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일제강점후 조선귀족령에
의해 남작작위가 주어졌다. 1919년 의친왕 망명기도사건에 가담하였고, 자신 역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아호가 동농이므로 동농 김가진으로 부른다. 3.1 운동 이전에는 애국계몽 운동가로 독립협회에 참가하였고, 1908년 대한협회
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1910년 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두문불출하고 많은 서예 작품을 남겼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랜 칩거를 그만두고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맡아 일제에 대항하였다. 11월에 74세 노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향해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 뒤 아들(김의한), 며느리(정정화), 손자(김자동)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22년 7월 4일 77세를 일기로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임시정부가 주관,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다. 한학에 정통했고 서예로도 유명하다.
미불(米芾)체와 동기창(董其昌)체에 능했다(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자 한다면 네이버에서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서 자료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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