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33.5*58.5 |
|---|
| 제조국 | 한국 |
|---|
오원 장승업의 화풍을 이어받아 산수, 인물, 화조에 모두 능했으며, 전통 회화를 근대 미술로 이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뿐 아니라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근대 미술계의 거장이자,
조선 왕조의 마지막 궁중화가한 심전 안중식의 작품 1점.
아래 참고바랍니다.
서울 청진동에서 출생. 아버지는 성균생원 홍술(鴻述)이며, 어머니는 밀양 주씨(密陽朱氏)이다. 12세 때 부모를 모두 잃은 사실 이외에 그의 어린 시절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때 알게 된 조석진과는 평생을 친구로 사귀면서 당시 화단의 쌍벽을 이루었다. 1902년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畵師)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어진도사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이왕가(李王家)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설립되자 이곳에서 조석진 · 김응원(金應元)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화미술원 출신으로는 이용우(李用雨) · 오일영(吳一英) · 이한복(李漢福) · 김은호(金殷鎬) · 박승무(朴勝武) · 최우석(崔禹錫) · 노수현(盧壽鉉) · 이상범(李象範)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 전통 회화를 이끌게 되는 대표적인 화가들이 되었다. 1918년 민족 서화가들을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결성되자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서화계의 지도적 인물로 추앙되었다.
1919년 4월 초순에 3 · 1운동과 관련되어 내란죄라는 죄명으로 경성지방법원의 예심에 회부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사망하였다.
그의 산수화는 대체로 정형화된 남종화풍과 북종화적인 청록산수화풍(靑綠山水畵風) 그리고 남북종 절충 화풍의 세 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러나 화풍상의 변천 과정에서 볼 때 1910년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경물(景物)을 공간 가득히 채워 밀폐시키는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전기의 화풍은 그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장승업(張承業)의 화법을 주로 따랐다. 후기에는 남북종이 융합된 절충 양식을 토대로 원숙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화풍은 서화미술원 출신의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근대의 전통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는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산수도」(1909년), 간송미술관 소장의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1911년), 삼성미술관 소장의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1913년)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등이 있다.
액자에 있던 작품을 액자가 험해져서 분리를 한 상태입니다.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지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경매 시작가는 1만원입니다.












영수증발행 : 온라인현금영수증(소득공제용 / 지출증빙용)
영수증신청 : 수령확인시에 개인소득공제용 또는 사업자회원님의 지출증빙용(세금계산서대체)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주)코베이옥션에 등록된 상품과 상품내용은 개별 판매자가 등록한 것으로서, ㈜코베이는 중개시스템만 제공하며 해당 등록내용에 대하여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가 사업자회원이 아닌 개인회원의 경우 판매자 정보는 [코베이옥션 결제처리] 이후 판매자의 연락처 등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즉시 제공하게 됩니다.
코베이옥션은 구매안전서비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