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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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일본 | 연대 | 1900년~194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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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샤프(SHARP) 보급 10호형(普及10號型) 고전 진공관 라디오 수신기 - 일제강점기 하야카와 금속 제조 오리지널 명판 및 마츠다 진공관이 잔존한 박물관급 초희귀 근현대사 사료 제품
1. 설명 - 대한민국 근현대 방송 역사와 가전사에서 가장 엄혹하고 격동적이었던 일제강점기 후기, 역사의 생생한 현장을 소리 없이 지켜보았던 기념비적인 유물, 하야카와 금속공업 주식회사(早川金屬工業株式會社, 현 샤프 사)에서 제작한 '보급 10호형(普及10號型) 진공관 라디오 수신기' 제품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 근현대 생활사 전시실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초기 방송 가전 사료실에서나 그 가치 있는 자태를 영접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유물입니다.
당시 라디오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소리에 숨을 죽이던 최고의 귀중품이자 시대의 중심체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시 통제 체제 하에 대중적인 보급을 목적으로 제작된 이 고전 수신기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광복의 벅찬 감격과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안방에서 함께 겪어내며 살아남은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전면부를 보시면 원형 주파수 다이얼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비대칭적으로 설계된 전면 그릴 창의 클래식한 조형미가 돋보이며, 거실이나 서재 공간의 격조를 단숨에 높여주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특히 본 제품의 학술적 가치는 내부 및 후면에 온전히 보존된 오리지널 명판과 부속들이 증명해 줍니다.
내부 메탈 섀시 앞면에 견고하게 부착된 금속제 사양 명판에는 'シャープ受信機 普及10號型(샤프 수신기 보급10호형)', '早川金屬工業株式會社(하야카와 금속공업주식회사)'라는 당대의 제조사명과 함께 고유 일련번호가 선명히 음각되어 있어 진위성을 완벽하게 고증합니다. 여기에 '마츠다(マツダ)' 마크와 함께 UZ-57, UY-56, UX-12A 등의 모델명이 또렷하게 스탬핑된 오리지널 고전 진공관 소자들이 탈락 없이 제치 그대로 배열되어 있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진공관 표면에 선명하게 날인된 동시대 방송 검정 마크인 '放' 배지는 아날로그 기술의 장 장인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며, 오랜 연대감과 숭고한 역사성을 품은 마스터피스로 자신 있게 출품합니다.
2. 상태 - 작동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크기 - 가로 38Cm X 세로 17Cm X 높이 24Cm
3. 확인 사항 - 사진으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세월의 흔적이나 내부 부품 노후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제품의 특성상 이로 인한 반품은 불가 하오니 깨짐, 찍힘, 금간 것, 흠집, 변색, 오염 사진 꼼꼼히 확인 또 확인하시고 신중한 입찰 부탁드립니다.
4. 완충 포장, 택배 안전 배송 (배송 중 손상이 없도록 에어캡으로 견고하게 다중 포장하여 발송해 드립니다.)
5. 일제강점기 라듸오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은 경성방송국(JODK)이 개국한 1927년부터 1945년 광복 직전까지 전쟁과 제도적 변화(2중 방송 실시)에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허가를 받고 매달 청취료를 내는 ‘등록제(청취계약)’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공식 기록인 라디오 등록 대수를 통해 그 보급 추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라디오 보급 대수 추이
초기에는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값비싼 기계 가격 때문에 보급이 매우 더디었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 1927년 (개국 초기) | 약 1,440대 ~ 5,260대 | 개국 당시에는 1,440대에 불과. 라디오 한 대가 샐러리맨 연봉 수준으로 극소수 부유층만 소유.
| 1930년 | 10,226대 | 개국 3년 만에 공식 등록 1만 대 돌파.
| 1933년 | 32,058대 | 조선어 채널(제2방송) 독립 분리 실시로 한국인 수요 자극.
| 1937년 | 약 10만 대 돌파 | 중일전쟁 발발로 전시 뉴스 수요 폭증, 10만 대 선 돌파.
| 1940년 | 227,573대 | 보급 대수가 20만 대를 넘어섬. 가격이 10원대로 하락하여 대중화 시작.
|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 | 300,050대 | 일제강점기 역사상 최고치인 30만 대 기록.
보급 구조의 핵심 변화와 특징
① 초기 일본인 중심에서 한국인 확대로 초기 라디오는 철저히 조선 거주 일본인 중심이었습니다. 1927년 개국 직전 기준, 청취자의 약 80%가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20%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을 지나 1940년에 이르면 한국인 등록자가 약 9만 5천 명, 일본인이 약 9만 6천 명으로 비중이 거의 대등해질 만큼 한국인 사회에도 널리 보급됩니다.
② 라디오 보급을 폭발시킨 기점: '2중 방송'과 '전쟁' 라디오 보급 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조선어 방송 분리 (1933년): 초기에는 하나의 채널에서 일본어와 조선어를 섞어 방송했으나, 1933년부터 일본어 전용(제1방송)과 조선어 전용(제2방송)으로 나누면서 한국인 청취자가 급증했습니다.
일제의 침략 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전쟁 상황을 빠르게 전해 들으려는 대중의 심리와, 전시 체제 선전을 위해 보급형 라디오(국민형 수신기)를 적극적으로 보급하려 했던 일제의 정책이 맞물려 보급 대수가 수십만 대로 폭증했습니다.
③ 공동 청취 문화: "실제 청취자는 보급 대수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라디오 30만 대라는 수치는 현재 기준으로는 적어 보이지만, 실제 영향력은 훨씬 컸습니다. 기기가 귀했기 때문에 이발소, 상점, 식당 등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는 경우가 많았고, 마을 구장(이장) 집에 모여 다 함께 뉴스를 듣는 '공동 청취'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줄 요약
일제강점기 라디오는 1927년 수천 대 수준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 조선어 방송 독립과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며 급성장하여 광복 직전에는 약 30만 대까지 보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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