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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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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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33.5cm
독립운동가, 차문화선구자 아인 박종한 선생님의 귀한 명품 도자기입니다.
만수무강 명문이 들어가 있으며 볼거리가 많은 멋진 작품입니다.
철화와 도자기 형태가 일품이며, 도자기 가마에서 勝한 흔적이 보입니다.
아인선생의 작품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수집된 그대로 등록하오니 사진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박종한(朴鐘漢,1925년 3월 15일 ~ 2012년 5월 7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인이자 차문화운동가이다. 진주 대아중·고등학교 설립자이며 초대 교장으로 33년간 재직했다. 아인(亞人)이 그의 호이다. 69년 진주차인회 설립, 70년 전국최초 차전시회 개최, 79년 한국차인회 창립, 80년 일지암 복원, 81년 차의날 선포 및 차인선언문 작성 등 수많은 한국 차문화에 대한 공적을 남기었다. 2005년 제실 하천다숙(菏泉茶塾)이 문화재로 등록되었고[1], 2008년 제2회 다산(茶山)대상(문화예술부문)을 받았다. 또한 교육자로서 손문의 삼민주의와 남명 조식의 반구실천을 참고하여 오민교육을 창설하여 대아중고등학교에 실시하였다. 77년 남명제를 최초로 만들고, 78년에 남명집을 발간하였다.
조선 명종(1545~1567), 퇴계 이황의 뒤를 이어 대제학을 지낸 박충원(朴忠元)[2]의 14세손이며, 밀양박씨 연안공파 8세손인 하천(荷泉)공 박병집(朴炳集)[3]의 손자로 1925년 3월 15일(음력)에 태어났다. 1943년 진주공립중학교 졸업했다.[4] 일제 치하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유학을 통해 재일동포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한다.[5]
아인은 1943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1년간 머물렀는데, 최소해(당시 부산제2상업학교 졸업)와 같은 하숙집에서 생활하였고 이때 최소해에게 반진단 결성을 최초로 제의했다.[6] 귀국 후, 1943년 8월, 박종한(朴鍾漢, 당시 19세), 최소해(崔小海, 당시 19세)가 주축이 되어 서병도(徐炳道, 당시 19세), 김대성(金大成, 당시 19세) 등에 의해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부산시 대신동 김대성의 집에서[7] 독립운동을 위해 ‘반진단(般震團)’이라는 항일단체를 결성하였다.[8] 반진단이란, 최남선의 <조선역사>에서 생각을 얻었으며, 그 의미는 돌릴 ‘반(般)’, 발해 ‘진(震)’으로 ‘진으로 돌린다’는 의미 즉,나라를 되찾는다는 뜻이라고 한다.[9] 이는 광복에 대한 숨은 뜻을 일반인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0]
반진단 활동목적은 일제 군수물자의 대륙수송지인 부산부두를 폭파하고, 식민정책을 수립하여 조선인에 대한 수탈과 핍박을 자행하는 일제 고관들을 암살하는 것 등이었다. 이는 1940년대 부산지역의 항일운동 양상인,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이를 민족해방의 결정적시기라고 인식하여 이전과는 달리 무장화하는[11] 분위기와 일치하다. 당시 경남 진주 요시노보통학교(현 진주중안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종한과 조선운수주식회사에 근무하던 최인환이 무기 구입을 위한 자금을 대고, 서병도․최소해가 무기를 구하는 역할을 하였다.[12] 44년 11월, 일제가 대륙 병참기지 항으로 쓰고 있던 부산항의 폭파계획을 세우다 조직원 이름이 적힌 연판장이 발각되어,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중 압송되어 부산형무소에 투옥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다, 45년 8.15 광복으로 구사일생으로 출옥하였다.[13]
1946년 4월 8일, 광복(光復)으로 구사일생한 반진단원(般震團員)들은 아인선생의 자택에 모였다. 국토가 양분되고, 좌·우익이 격렬하게 투쟁을 하던 신생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정치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각계 분야에 필요한 인재가 없음을 아쉬워하고 조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고 학교 설립의 뜻을 모았다.[14] 한국전쟁 이후 1953년 12월 23일, 민족의식에 불타던 26세의 젊은 아인은 물려받은 전 재산을 털어 진주시 인사동에 대아 중·고등학교 설립해, 33년간 교장으로 재직하였다.[15]. 교명이 대아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한민족의 운명을 넓은 입장에서 보지 못하고 우물안 개구리 같은 좁은 견해로 보고있다며 "아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와 "아시아의 운명 속에 조국이 있다"며 아시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생각하며 교명을 대아(大亞)라 지었다.[16] 특이한 것은, 다른 학교가 설립인가를 받은 날을 개교기념일로 삼지만, 대아중·고등학교는 4월 8일을 개교기념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학교 설립의 뜻이 발생한 4월 8일을 개교기념일로 삼았기 때문이다.[17]
대하고등학교를 설립할 당시에 학교는 진주에서 2차로 입학하는 2류학교였다. 자서전 오성다도(五性茶道)에서 회고하기를 "많은 학생들이 행동과 말이 거칠고, 정서가 산만했다. 따라서 가르치는 선생도 거칠어지고, 모든 것을 체벌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체벌은 일순간적이고 교육효과가 높지 않다. 체벌로 인한 악순환만 심해지고, 부모에 효도하라, 나라에 충성하라, 예절을 지켜라 등은 공염불이 되었다."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 향상은 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18] , 핵심 교육이념으로 오민교육(五民敎育)이 창설되었다.
1970년 4월 8일, 손문의 삼민주의(三民主義)와 남명 조식의 반구실천(反軀實踐)을 참고하여 오민교육(五民敎育)을 저술하고 대아중·고등학교에 오민교육을 실시하였다.[19] 오민교육이란, 손문 삼민주의에 민성과 민복을 추가한 민성(民性)·민생(民生)·민족(民族)·민본(民本)·민복(民福)의 교육사상을 담은 것을 말한다. 민성과 민복은 반진단정신과 더불어 춘원(春園)과 도산(島山)이 주장하는 망국의 민족성 개조를 꿈꾸는 민성과 민족 최후의 목표는 문화의 창조로 얻어지는 인간의 행복에 있다는 민복사상이다.[20]
오민교육의 첫째는 민성(民性)교육에 있다. 자서전 오성다도(五性茶道)에 나오기를 민성교육이란, "국민의 성품을 고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품은 순리대로 되어야 하는 것으로, 성품이 차분해야 모든 일에 집중을 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생산되고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이라 하였다. 성품교육이 오민교육 중 가장 먼저인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21]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 선생이 대아고등학교를 방문하여 남긴 휘호인 "敎育導善, 착한 마음과 행동을 교육으로 이끌어 낸다"라는 휘호도 민성교육을 통해 좋은 성품을 길러야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하다.
생활기술 교육을 말하는 것으로 진학지도에 해당한다. 개인에 맞는 직업 적성을 개발하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가[22]를 알게 하는 교육을 뜻한다.
배달민족으로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이다. 한편, 애국심을 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국가가 안정적인 국민생활을 보장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이하다. 즉, 민생이 해결되었을 때 훌륭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교육이라 보면 된다. 역시, 민생이 해결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오민교육의 마지막은 민복교육이다. 민성을 올바르게 기르고 "국민 개개인이 민생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살려 먹고 살만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질적인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질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미의식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미의식이 있어야 문화를 알 수 있고, 문화를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가장 나중에 싹튼다."[23]
자연의 사계절의 순리가 있듯이 사람도 민성, 민생, 민족, 민주, 민복의 일정한 순서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먼저 좋은 성품과 좋은 민족성을 길러야 모든 것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24]
따라서 아인선생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오민교육의 첫 번째인 민성교육이고, 이를 위해 오성다도를 비롯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인선생이 성적이 오르지 않는 많은 학생들을 상담한 결과, 대부분의 문제학생들은 정서가 제일 불안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서부터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 판단하고, 직접 학생들이 실천하면서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위한 것이 오민교육의 첫 번째인 민성교육을 위해 다도교육으로 정서부터 안정시키는 것, 남명선생의 실천적 가르침을 위한 충무공의 백의종군길을 개척, 추모행군에 나섰고, 정기적인 충렬사 청소, 오민박물관의 생활문화 체험, 민족의 스승을 모신 모현단 참배 등을 실시하여 스스로 느끼고 그것을 직접 실천하도록 했다.[25]
이런 교육방법을 통해 최대성과를 낸 84년을 보면 전체학생 600여명 중, 서울대에 66명을 진학시켜 전국 서울대최고합격률을 기록하였고, 고려대와 연세대에 각각 110명과 100명을 합격시켜[26] 대아교육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대아학생들은 민족교육의 하나로 매주 창렬사를 참배하고 청소를 한다. 창렬사는 임진왜란 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인물들의 신위를 모시는 곳이다. 본래 12명의 장수의 위패를 모셨으나, 전쟁에서 죽은 7만의 이름없는 군관민의 위패없음을 아인이 안타까워해서 제장군졸지위(諸將軍卒之位)라는 비석을 세워 이름없는 장졸까지 모두 추모하게하였다.
둘째로, 매년 4월 28일 전교생이 충무공의 백의종군길을 따라 추모행군을 한다. 이는 민족교육효과와 함께, 다도교육과 더불어 학생들에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문화와 충무공의 희생정신을 배양시키기 위함이다.
셋째로 모현단 참배가 있다. 대아고등학교 교문 바로 옆에 역대 민족의 스승과 민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신 민족선사를 모셔두고 있다. 이는 홍익인간의 교육사상을 편 단군부터 시작해서 세종과 조식, 이이 등을 거쳐 수운 최재우까지 고대인물과 안창호, 이상재 등 현대인물로 구성되어있다. 실천과 행동으로서 인성을 닦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는 남명의 교육법을 본받은 것으로 매일 교문 앞 이곳을 지나며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넷째로, 학교정원이다. 가시가 있는 장미를 뽑아내고, 한국전통정원조경의 최고 권위자인 당시 95세의 한도선생을 모셔 학교 정원조성을 의뢰했다. 이를 통해 정서순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도교육 등 수많은 자체 대아학원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차문화를 통한 오민교육의 대성공을 계기로, 그는 차문화가 민족성 개조의 대안문화이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차문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27]
1969년 진주차인회 설립, 1979년 한국차인회 설립, 1981년 차의날 선언문 작성
정식명칭은 이다양성 오성다도(以茶養性 五性茶道)이고 차를 통해서 인성을 개발하는 즉, 인성을 생활 속에서 닦는 오성다도란 뜻이다. 다반사(茶飯事)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차를 마시고 식사하는 생활 속에서 차근차근 예절과 품위를 가꾸어 나가면 좋은 성품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또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하여 차를 마시는 것과 도를 닦는 것은 같은 맛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다도생활이 곧 개인수양과 같다고 풀이해도 과언이 아니다.[28]
오성에는 신성, 영성, 족성, 자성, 감성이 있으며 이는 논리적 사유, 신비적 사유, 윤리적 사유, 반성적 사유, 감성적 사유를 뜻한다. 오성다도는 이 5가지 신,영,족,자,감성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족성을 만들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해 온 그의 노력으로 다도와 교육환경을 통한 정서순화와 생활실천을 통해 이루어진 교,육은 불과 5년 만에 대아고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명문학교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29]
아인은 남명 조식의 경의(敬義)사상에 덧붙여 현대사회의 배려하는 정신(情)이 없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정을 더해 경의정(敬義情) 사상을 정립했다.
남명선생의 기존사상에 덧붙여 새로운 해석으로,
내명자경(內明者敬) - 경으로써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외단자의(外斷者義) - 의로써 행동하고 실천한다 배려자정(配慮者情) - 정으로써 타인을 염려하고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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