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방자는 일본의
방계 황족이었으며, 부계 혈통상
스코 천황의 18대손이다. 결혼 전의 호칭은 마사코 여왕(方子女王)이었으며, 지위는
여왕(女王)이었다. '여왕'은
일본 황실의 칭호 중 하나다. 본래
천황의 4대손까지를 친왕(남)/내친왕(여)이라 하고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 그러다가
1947년(쇼와 22년)에 현행
황실전범으로 개정된 이후부터는 손주까지를 친왕/내친왕, 증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한다.
영친왕과 결혼하면서
왕공족의 일원이 되었다. 일본 황족은 본래 성씨가 없다. 성으로 알려진 '
나시모토노미야'는
궁호이다. 궁호는 해당
궁가(宮家)의
당주에게만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호칭은 그냥 '마사코 여왕(方子女王)'이었다. 다만 성씨가 없는 일본 황족 특성상, 당주가 아니더라도 미야고를 성씨처럼 쓰기도 한다. 영친왕과
결혼 후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하는 당시 일본의
민법에 따라 남편과 같은 '이(李)'씨 성이 되었다. '이방자'라는 이름은 본명인 마사코(方子)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어서 완성된 이름이며, 일본에서는 원어 그대로 '리 마사코'라고 부른다. 남편의 성을 그대로 따랐으므로, 본관은
전주 이씨라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영친왕의 지위는 이왕세자였고,
순종황제가 사망한 후에
이왕이 되었다. 이에 이방자는 결혼 당시 '이왕세자비 마사코 여왕(李王世子妃方子女王)'으로 불렸고, 영친왕이 이왕에 오른 뒤에는 '이왕비 마사코 여왕(李王妃方子女王)'이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방자는 황족 이외의 남성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신적강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왕공족은 일본 황실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고, '여왕' 칭호를 유지하라는
다이쇼 천황의 칙령(
《관보》 제2320호 〈궁정록사〉)도 있었기에 이후에도 여왕 지위를 유지하였다.
1947년(쇼와 22년) 왕공족 제도 폐지 뒤에는 그저 '이방자(리 마사코)'로 불렸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제국의 기준에 맞출 경우, '영친왕비(英親王妃)'라고 부르거나, '의민황태자비(懿愍皇太子妃)'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는 틀렸다. '영친왕' 작호는 영친왕이 황태자가 된 1907년(융희 원년)에
폐작되었기 때문 에, 이방자는 '영친왕비'가 될 수 없다. 한국·중국은
저위(儲位)와 작위를 겸할 수 없기 때문에 태자가 되면 왕작(제후국 체제였던 오리지널 조선 시대의 경우 (
대)
군호)이 소멸한다(순서가 거꾸로이긴 하지만
양녕대군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저위와 작위가 별개라서 '황태자 ○○친왕' 같은 호칭이 실제로 사용된다.
그리고,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현덕정목온정자행황태자비(顯德貞穆溫靖慈行皇太子妃)'라는 사시(私諡)
[8]를 올렸으므로, 대한제국에 맞춘다면,
'자행비'가 올바른 명칭이기 때문이다. 기타 존호를 앞에 쓰고, 시호를 맨 끝에 붙이는
조선의 관행상, 시호로 호칭할 경우에는 '자행황태자비'나 '자행태자비'가 된다. 그런데 왜 '자행비'로 부르는 게 맞냐면, 대한제국
황태자비의 시호는 '○○비'였기 때문이다.
순명효황후가 황태자비로서 받은 시호는 '순명비'였다.
중국에선 이런 경우 '○○황태자비'로 시호를 올렸는데, 이방자의 사시는 이를 참고해서 지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의민황태자비'든 '자행비'든 간에 상기해야 할 점이 있다. 이방자는
대한제국의 황태자비로 정식 책봉받은 적이 없다는 것. 왜냐하면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했던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인 1920년에 영친왕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은
왕공족을 여전히
황족으로 여겼기 때문에,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왕공족과 결혼한 이나 왕공족으로 태어난 이들도 일반적으로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간주하는 편이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들은
'대한제국의 황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방자 외에 1912년생인
덕혜옹주와
이우, 1931년생인
이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당시 왕공족으로서 이왕세자 지위에 있었던
이은과 결혼한 이방자를 '
황태자비'로 대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옳지 않다. 조금 더 엄격하게 말하면,
그냥 한 때 황태자였던 사람의 부인일 뿐이다. 다만, 황태자 이은의 하나뿐인 아내이기 때문에 황태자비로 여기고 대우했던 것이다. '자행황태자비'라는 황태자비 자격의 시호는, 조선-대한제국이 망하면서 국성의 지위를 잃은 후 더 이상 왕조 시대의
종친부 같이 공적인 지위가 없는 민간 단체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멸망한 대한제국 황실을 대신하여 사사로이 올린
시호(사시)일 뿐이다. 그 때문인지 이방자는 사시나 그 약칭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다.
'이방자 비'라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명칭은
일본 황실의 호칭 체계에 따른 것(이름+비)이라 현대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적절한 호칭이 아니다. 다만, 왕공족 시절의 이방자를 가리키는 경우에 한해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호칭은 '이방자 여사'이며, 엄밀히 따지면, 이 호칭이 가장 적절하다. 현대 한국에서 사시를 공적으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흑역사였던 일제시대의 이왕가 시절의 호칭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전에 본인 스스로 '이방자 여사'라는 명칭으로 대중매체와 접촉했으며, 1981년 한 여성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였던 배우
장미희가 "호칭을 어떻게 할까요? '비 전하(妃殿下)'라고 해야 할까요?"라고 묻자, 이방자 본인이
"그냥 편한 대로 '여사'라는 호칭을 써 주세요."라고 직접 대답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