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21/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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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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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安珦 (1243년~1306년).
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조부는 안영유, 부는 밀직부사 안부(安孚), 모는 순정군부인 강주우씨로 예빈시동정 우성윤(禹成允)의 딸이다. 흥주(興州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순흥 안씨의 관향) 상평리(上坪里) 출생으로, 아버지는 원래 흥주의 관리였으나 의술(醫術)로 출세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주자 저서인 주자대전을 직접 필사하여 고려로 전하였는데, 이로써 성리학(주자학)을 최초로 고려에 소개, 전파하였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1260년(원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교서랑에 임명되었고, 그 뒤 한림원직을 역임했다. 1270년 (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강화(江華)에서 적에게 사로잡혔는데, 계책을 써서 탈출했으므로,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상을 내렸다. 탈출 후 감찰어사에 임명되었다. 충렬왕 즉위 초, 상주판관으로 재직 중, 무속인이 백성들을 현혹한다고 보고 이 무속인을 엄하게 처벌하여 미신습속을 타파하였다. 이후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郞) 전중시사(殿中侍史)를 거쳐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이 되었다.
1294년(충렬왕 20) 동지밀직으로 동남도병마사가 되어 합포에서 변방 방어 업무를 잘 처리하였고, 밀직사사 삼사사좌사 첨의참리세자이보, 이후 참지기무 행동경유수가 되었다가, 집현전대학사를 거쳐 계림부윤, 첨의참리 수문전대학사 감수국사가 되었으며, 충렬왕이 왕위를 충선왕에게 선위한 뒤에는 상왕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충렬왕이 복위하자 다시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를 방문하고 되돌아왔다. 이후 첨의시랑찬성사 겸 판판도사사가 되었다. 수태사 문하시중은 후일 추증된 증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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