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3.5 X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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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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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일당 이완용
시대 : 일제강점기
규격 : 32.5 × 134
< 약력 >
이완용 [李完用, 1858~1926]
본관 우봉(牛峰), 자 경덕(敬德), 호 일당(一堂)이다.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注書)·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검교(檢校)·수찬(修撰)·동학교수(東學敎授)·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를 역임하였다.
1881년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들어가 영어를 배운 뒤 응교(應敎), 세자시강원 겸 사서(司書)를 지냈다. 1887년 주차미국참사관(駐箚美國參事官)으로 도미(渡美), 이듬해 5월 귀국한 뒤 이조참의(吏曹參議) 겸 전보국회판(電報局會辦), 외무참의(外務參議)를 역임하였다. 1888년 12월 미국 주차대리 공사가 되어 다시 도미했다가 1890년 귀국하여 대사성(大司成)·교환서총판(交換署總辦)을 역임하였다. 1895년 학부대신(學部大臣)·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 되었다.
1896년(건양 1)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친러파로서 외부대신·농상공부대신 서리를 겸직, 1901년 궁내부 특진관(宮內部特進官)으로 있다가 친일파로 바뀌어 1905년 학부대신이 되고, 같은해 11월 을사조약의 체결을 지지, 솔선하여 서명함으로써 을사5적신(乙巳五賦臣)의 한 사람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해 12월에 의정대신서리·외부대신 서리를 겸직, 1907년 의정부 참정이 되었으며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다음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헤이그밀사사건 후 일본의 지시대로 고종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양위(讓位)할 것을 강요, 순종을 즉위시키는 등 매국행위를 하다가 1909년 이재명(李在明)으로부터 자격(刺擊)을 받았으나 상처만 입었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 전권위원(全權委員)이 되어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 그 공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백작(伯爵)이 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거쳐 1911년 조선귀족원 회원을 역임, 1920년 후작(侯爵)에 올라 죽을 때까지 일본에 충성을 다했다. 글씨에 뛰어났다. 편저에 《황후폐하 치사문(皇后陛下致詞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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