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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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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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와당문[瓦當文]
작품 사이즈 : 30 x 32 < 작품성 높은 작품 >
-한자 해석-
三輔圖上林苑中(삼보도상림원중) '삼보황도'라는 책의 '상림원' 편,
二十一觀有白鹿觀(이십일관유백록관) 제 21관에 백록관이 있는데
卽此觀白鹿(즉차관백록) 곧 이 관에 백록을 (기술한 것은)
甲天下所以表瑞(갑천하소이표서) (백록이) 천하에서 제일로, 상서로운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惺齋 摹(성재 모) 성재가 베껴 쓰다.
*惺齋(성재)는 金台錫(김태석)
김태석(金台錫)
김태석(1875~1953)의 호(號)는 성재(惺齋)요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위창과 더불어 근대 한국 전각계의 쌍벽을 이룬 성재는
일찍이 청국(淸國)과 일본에 만유(漫遊)하며 많은 묵연(墨緣)을 맺었으며
귀국 후에는 ‘대동한묵회(大東翰墨會)’를 조직하여
전람회를 여는 등 서예와 전각을 통해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는 각 서체에 능했지만 특히 전서에 뛰어났으며 전각에도 전념하여
한국의 등석여(鄧石如)라는 별칭이 있다.
성재는 중국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15년(1908~1923)동안 체류하면서
전각에 전념하여 3 만과(萬顆)에 달하는 공사인(公私印)을 각(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38세에 되던 해인 1913년에는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總統)이었던 원세개(袁世凱)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국무원 비서직으로 있으면서 옥새(玉璽)를 비롯한 많은 인장을 각(刻)하였다.
성재의 인예(印藝) 중 가장 특색 있는 것은
선대(先代)의 많은 전각들이 측관(側款)을 남기지 않는 반면
성재는 측관을 잘하여 남겼으니,
이는 그가 이미 청년시절부터 중국을 내왕하며 견학한 결과의 산물이다.
성재의 인흔(印痕)은
<남유인보(南遊印譜)> · <동유인보(東遊印譜)>
<성재재중전각인영집(惺齋在中篆刻印影集)>
<승사인보(乘槎印譜)> · <새인도고인집(璽印圖攷印集)>
<원세개총통사장인집(袁世凱總統私章印集)>
<중화각부현인문집(中華各府縣印文集)>
<청유인보(淸遊印譜)> · <수명루인보(水明樓印譜)> 등의
여러 인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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