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가로33.5cm*세로22.5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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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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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서양화(1912-1950) /미감정품
<사이즈>그림: 33.5*22.5cm
액자: 42.5*30.5cm
재료: 캔버스에 유채
우리는 이인성을 천재화가로 부른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 및 연속 특선 6회 그리고 최고상인 창덕궁상(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불행하게도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경찰관과 시비로 38세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화가 입니다.
이인성 화백은 서구의 인상파와 야수파, 표현주의, 후기 인상파의 화풍을 한국적 토속성과 결합시켜 향토색 짙은 색조미를 구현하였습니다.
위 풍경 작품은 이인성 화백이 즐겨 쓰는 주황의 황토색과 남색 계열의 푸른색, 녹색이 잘 어우러진 이인성 특유의 색감이 잘 와 닿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이인성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며 물감 사이로 땟물이 배어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소장품으로 미감정 작품 입니다.
잘 살펴 보시고 신중한 입찰을 바랍니다.
*액자에 유리가 있으나 낙찰되신 분께는 꼼꼼히 포장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약력>
이인성(我笑 李仁星,Lee In sung 1912.8.28 ~ 1950.11.4)
▽출생 1912
▽분야 회화
▽학력 태평양 미술학교
▽작품 전시,예술작품
서양화가 이인성은 1912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수채화의 개척자로 꼽히는 서동진(徐東辰)에게 사사했다. 1929년 18세의 나이에 수채화 《그늘》로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첫 입선하고,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세모가경》이 특선을 받았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귀하게 여긴 대구 유력자들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가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라는 미술용구 회사에 취직하는 한편 이듬해인 1932년부터 1935년까지 다이헤이요 미술학교 야간부에 입학해 미술공부에 정진했다.
이인성은 1932년 《카이유》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또다시 특선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름 어느 날》을 출품해 입선했다. 그는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를 시작으로 1944년 제23회 마지막 조선미술전람회까지 단 한 차례로 거르지 않고 3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출품해 입선과 6회 연속 특선, 그리고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더불어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에서도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거머쥐었다. 가난 때문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는 관전을 통해 그의 실력을 인정받기 원했고, 잇단 입상으로 ‘조선의 보물’. ‘화단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며 당대 제일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인성은 1935년 귀국해 일본에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한 김옥순과 결혼했다. 김옥순은 대구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딸로, 그의 아버지 김재명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대구 남산병원의 원장이었다. 김재명은 남산병원 3층에 사위의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으며, 1936년에 이인성은 그곳에 ‘이인성 양화 연구소’를 열었다. 미술학교 하나 없던 시절에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양화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자 그의 필력은 더욱 피어났다. 그러나 1942년 아내와의 사별 이후 그의 화필은 힘이 꺾였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 검문하던 경찰관과 시비가 붙어 경찰관의 어이없는 총기 오발로 죽음을 맞았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인성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그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으로 어수선한 시절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시기 한국 화단은 추상화 물결이 거세게 일어 구상화가 대부분인 그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관전을 중심으로 한 그의 활동 역시 관전 작가라는 꼬리표와 함께 친일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작가인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등이 대중들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그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혀 잊혀가는 작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인성은 한국 근대미술의 도입기이자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 동안 그 누구 보다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화가였다. 우선 그는 수채화로 독특한 자기 표현양식을 확립했다. 수채화로 보여주기 힘든 강렬한 원색의 사용과 뚜렷한 명암법, 그리고 짧고 촘촘한 붓 터치로 수채화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또한 일본 유학시절에 접한 서구의 인상주의와 야수파, 표현주의, 후기 인상주의의 화풍을 한국적 토속성과 결합시켜 향토적 서정주의를 구현했다. 인물 표현에서도 자기 주변의 인물을 대상으로 삼아 한국적인 인물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조선의 고갱’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거칠면서도 강렬한 필법과 치밀한 공간 구성능력, 토속적인 색조미로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미적으로 승화시킨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의 가장 출중한 화가임에 틀림없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에는 《가을 어느 날》(1934), 《여름 실내에서》(1934), 《경주의 산곡에서》(1935), 《실내》(1935), 《한정》(1936), 《애향》(1943년경), 《해당화》(1944), 《빨간 옷을 입은 소녀》(1940년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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