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22×15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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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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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은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실(청와대) + 국무총리실 + 행정각부'를 모두 합쳐놓은 최고 국가 권력 기관이자, 조선시대로 치면 왕명과 최고 정무를 총괄하던 의정부(議政府)와 같다.
메이지 초기 일본의 태정관은 이 모든 조직의 꼭대기에서 행정·입법·사법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초강력 내각'이다.
본매물은 메이지 정부 초기 태정관에서 발행한 공식 관보인 태정관일지(太政官日誌)이다.
그중에서 1870년(메이지 3년) 1월 1일부터 12월 까지 1년치 묶음集이다.
1870년은 한일 근대사 및 독도 주권 연구에서 가장 가파르고 불꽃 튀던 순간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해이다.
본 일지 세트는 당해 연도 최고 기관의 공식 기록으로서 다음과 같은 1次 사료적 상징성과 가치가 있다.
1. 독도 주권 입증의 결정적 배경 연도
1870년 초, 태정관의 명령으로 조선을 정탐한 외무성 관료들이 제출한 공식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되어 있는 전말"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후대(1905년) 일본의 '무주지 선점론'을 35년 앞서 반박하는 핵심 근거이다.
본 일지는 이 위대한 독도 사료가 생산되고 메이지 최고위층에서 논의되던 동시대(1870년) 최고 기관의 공식 관보이다.
2. 최초의 조선 침략 예비안(정한론)과 강화도 타격 시나리오
이 시기 메이지 정부 내부에서는 구한말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군사 대비책이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당시 보고서에는 "주력 부대 30대대를 동원하여 강화도를 먼저 점령하고 서울을 직접 타격한다"는 구체적인 군사 행동 각본이 담겨있다.
이는 5년 뒤인 1875년 운요호 사건(강화도 무력 도발)으로 고스란히 실행된다. 본 책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 야욕의 첫 단추가 끼워지던 해의 생생한 정부 기록이다.
3. 1870년 일지 안에서 만나는 한일 갈등의 특이 사항들
왜관 봉쇄와 일본 외교관 고립 사건: 흥선대원군의 서계(국교 문서) 거부로 인해 부산 왜관에 고립된 일본 외교관들의 다급한 정세 보고와 태정관의 조치들이 날짜별로 맞물려 있다.
병인양요(1866) 직후이자 신미양요(1871) 직전, 조선의 배외 정책과 요새 방어 태세를 탐지한 정부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당시 단절된 외교 상황 속에서도 부산 왜관과 대마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민간 밀무역 단속 및 상인 처리 문제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구체적인 비밀 보고서나 군사 시나리오 원문은 조정의 내부 비밀 문서철에 보관되었으나, 그 모든 사건의 발단과 인사 명령, 왜관 동향 및 공식 조치들은 바로 이 태정관일지 라는 공식 관보 체제 안에 실시간으로 맞물려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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