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史料/ 동래남문碑/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을 쓰고.,/1737년 以前 生成 추정 탁본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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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9일 22:24:31)

경매번호 2604L62M3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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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18×34센티
제조국 한국

낙장 무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을 쓴 碑를 탁한 것


*탁본 내용이 總 52面으로 웬만한 책 한권 내용입니다


첫 페이지 하단이 부분 파손되어 글씨 '한글자'가 안보이는 것 말고 전체 面이나 탁본 글씨가 파손되지 않았음(첫 이미지 참조)


이 비석을 새긴 시기

庚戌六月 日立 (경술유월 일립)

"경술년 6월 어느 날에 세우다"라는 뜻.

여기서 경술년은 문맥상 송시열이 활동하던 시기인 1730년(영조 6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 시기에 송시열의 글을 바탕으로 송상현 부사를 기리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탁본첩의 제작 시기;

이 탁본첩의 원 소장, 소유주 李廣道(1673~1737)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司諫,안산 군수等 여러 부사를 지내시고 種成府使를 지내신 분의 遺品입니다(판매자 보증) 

따라서 이 양반이 돌아가시기 以前(1737년 以前) 본매물인 탁본첩이 생성되었다는 것을 유추,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上記 내용은 본판매자만 알고 있지 이광도 양반 유품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구매자)는 판매자의 上記 해제를 충분히 신뢰한다"라고 동의하시는 분에 한해서만 응찰바랍니다 



이 탁본은 송시열이 송상현 부사의 충절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칭송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아 작성된 문헌


<우리나라 문화유산> 발췌--

現) 부산시 지정문화유산


ㆍㆍ ㆍ현재 비석은 크게 파손되고 비면에 새겨진 기록은 거의 떨어져 상부에 약간의 글만 남기고 있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분들의 충렬(忠烈)을 기리어 당시의 격전지인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에 세웠던 비로, ‘동래충렬비’라고도 부른다.

현재 비는 받침돌 위에 크게 훼손된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그 위에 얹었던 머릿돌을 옆에 따로 놓여 있다. 


비문에는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다음날 싸움에서 부산진첨사 정발이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일, 


병사 이각의 비겁한 도망, 동래부사 송상현의 의연한 죽음과 비장 송봉수·김희수·향리 송백·교수 노개방·유생 문덕겸·양통한의 순절, 


양산군수 조영규의 절의 등 왜병들과의 처절한 싸움내용과 동래부 군·관·민의 순국 충절을 기록하고 비를 세우기까지의 경위를 밝혔다.

비는 현종 11년(1670)에 처음 세웠으며 숙종 35년(1709)에 별사 앞뜰에 옮겼다가 영조 12년(1736) 별사가 없어지면서 남문 안으로 옮겨 놓았던 것을 1976년 시가지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현종 9년(1668)에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宋浚吉) 이 썼으며, 비의 제목은 이정영이 썼다.


<주요 내용>


이 첩의 내용은 주로 조선 후기에 송상현 부사의 행적을 정리한 송시열렬기(宋時烈烈記) 또는 그와 관련된 충렬 기록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조선 시대 문신에게 주던 정1품 품계.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송상현 부사에게 사후에 추증된 관직 등을 나타낸다.

경연사(經筵事), 춘추관사(春秋館事) 국왕의 교육과 역사 편찬을 담당하는 관직.

송시열렬기(宋時烈烈記): 송시열이 정리하거나 쓴 것으로 보이는 송상현 부사의 충절에 관한 기록.

2. 동래성 전투의 상황 
전투 당시의 긴박함과 군사들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다.

성후속기순성(城侯屬氣巡城): 성주(동래부사)가 기운을 내어 성을 순찰하며 독려했다는 의미.

수적삼항적시여(數賊三亢積尸如): 몰려든 왜적의 무리가 세 겹으로 쌓여 시체가 산과 같았다는 전투의 참혹함을 묘사.

3. 송상현 부사뿐만 아니라 그를 따랐던 인물들의 최후를 기록.


萬曆壬辰四月十三日 (만력임진사월십삼일) 명나라 연호인 만력을 사용하여, 임진년(1592년) 4월 13일에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명시.

倭賊數十萬犯境 (왜적수십만범경)

왜적 수십만 명이 국경을 범하여 침입했다는 기록.

釜山僉使鄭侯撥 (부산첨사정후발) 

부산진 첨사 정발(鄭撥) 장군이 가장 먼저 적을 맞아 싸웠음을 언급. 정발 장군은 부산진 전투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했다.


2. 동래성 포위와 송상현의 대응 
왜군이 부산진을 함락시킨 후 동래성으로 진격해온 상황을 묘사.

十四日燒賊 (십사일소적)

14일에 왜적들이 불을 지르며 공격해왔음을 나타낸다.

군민화성부동 (軍民和聲不動)

군사와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성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았다는 기록.

성후속기순성 (城侯屬氣巡城) 

동래부사 송상현이 기운을 내어 성을 돌며 군사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다시 강조.

3. 역사적인 명구


 "사과도난" 
이 탁본의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왜군의 요구와 송상현 부사의 답신이 적혀 있다.

가도난 (假道難)

 왜군이 "길을 빌려달라(假道)"고 요구하자, 송상현 부사가 답함.

전사역이 가도난 (戰死易 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그 유명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사생간 (死生間)

죽고 사는 사이의 결단을 내린 숭고한 정신을 묘사.

목상서왈 (木上書曰) 

송상현 부사가 나무 판에 글을 써서 성 밖으로 던져 자신의 결의를 보였던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


이 기록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1592년 4월 13일부터 14일까지 부산과 동래에서 벌어진 비극적이고도 용맹한 항전의 기록입니다.

정발 장군의 부산진 전투

왜군의 동래성 포위와 "길을 빌려달라"는 협박

송상현 부사의 "전사이는 쉬우나 가도는 어렵다"는 단호한 거절과 순절

이 모든 과정이 탁본으로 남겨져 당시의 호국 정신을 증언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사진의 '전사역이 가도난' 부분은 동래성 전투의 상징과도 같은 대목입니다.

애향(愛香), 

송상현 부사의 첩이었던 여인이다. 성이 함락되자 부사를 따라 자결하거나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역자도사(亦自到死)

 '또한 스스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주군을 위해 끝까지 정절을 지킨 인물들의 마지막을 설명.

본매물인 탁본첩은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는 


말을 남기고 순절한 송상현 부사와, 그와 함께 죽음을 택한 이들의 충성심과 절개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제작된 기록물.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동래 지역의 호국 정신을 상징하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



판매자 보충 설명
내용추가일시 : 2026/04/09 10:36
이 탁본첩의 원 소유주; 李廣道 이광도(1673~1737) 조선중기의 문신 ●1705년(숙종31) 식년시 진사 3등으로 합격●이후문과에 급제 사간원 사관 요직●영조 재위기간 中 함경도 종성부사 역임
내용추가일시 : 2026/04/09 10:25
입찰방해(황당한 문의 포함),미입금,구매거부,반품자는 제 물건 영구입찰제한자로 등록합니다 신중입찰바랍니다 보관,배송지연 안합니다 배송독촉금지要
내용추가일시 : 2026/04/07 16:58
이광도 遺品 中에서 본 매물과 함께 나온 이광도 소장품입니다 (본 매물이 이광도 유품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증명이 될까 싶어 올려 봅니다)
내용추가일시 : 2026/04/06 18:33
문화유산인 원 碑石은 현재 심하게 훼손되었음
내용추가일시 : 2026/04/06 16:01
본 탁본첩의 원 소유주는 이광도 양반의 유품입니다 (판매자 보증) 이광도(李廣道)는 1673년(현종 14)~1737년(영조 1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대중(大中)이다. 본관은 청해(靑海)이고, 거주지는 강화(江華)이다. 증조부는 이중원(李重元)이고, 조부는 이문위(李文偉)이다. 부친은 행목릉참봉(行穆陵參奉) 승사랑(承仕郞) 이소(李?)이고, 생부는 통덕랑(通德郞) 이영(李翎)이다. 1699년(숙종 25)에 식년시 진사 3등 45위로 합격하였고, 1708년(숙종 34)에 식년시 을과 4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이어 숙종?경종?영조의 세 임금을 섬겼으나 승진하는데 뜻이 없고, 오로지 백성들을 돌보는 데만 뜻을 두었다. 대간의 반열에 15년 동안이 있으면서 계속해서 그 당시의 잘못된 폐단을 지적하는 글을 올려, 칭찬과 함께 끊임없이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하라는 임금의 비답(批答)을 받았다. 간현(艮峴)에 살고 있었는데 임금이 여러 번 사간(司諫)의 벼슬을 내리고 역마(驛馬)를 보내어 불렀다. 종성 부사(鍾城府使)에 임명되었다가, 근무지에서 병사하였다.
판매자 정정 설명
내용추가일시 : 2026/04/07 18:15
이광도가 수군절도사를 지낸 양반은 아닌데 아래 두번째 사진 견출지에 표기한 '이광도 수군절도사'는 잘못 표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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