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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16.5×12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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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연대 | 1945년~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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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장 무
조준호상점 선물거래장부(인쇄) 1점
조준호상점 인쇄有 & 회사 로고 有
*조선인 대부호, 조준호 이야기*
***조준호상점은***
인천에 미두(쌀, 콩 등 곡물 선물 거래) 중매점까지 열어 2년 만에 인천 미두 시장 전체 매상의 60%를 나중에는 朝鮮米豆시장을 장악했다.
또한 조준호는
(당시 조선인이 최초로 세운 유일 증권거래소) 조선 전체 거래액의 10% 이상이 조준호 취인점을 통해 이루어졌을 정도였다
미두시장, 주식 중개 외에도 직접 투자에 나섰는데, 주식이 폭락하여 모두가 팔아치우는 투매장(投賣場)에서 오히려 대규모 매물을 사들였다가 급등장에서 막대한 차익을 얻는 대담한 투자 방식을 사용했다.
광복 직전까지 운영된 미두취인점과 조선취인소에서 조선인 중 가장 큰 부를 쌓았으며, 조준호는 주식으로만 당시 가치로 3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축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거액)
*****일제 강점기의 '米豆王'
'주식왕' 조준호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 출신 갑부였던 조중정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도쿄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25년 22세의 나이에 '시대일보'에 거금을 출자하고 전무로 경영에 참여했으나, 신문사 경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영국 유학과 남미 시찰을 다녀온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
주식 및 미두(米豆) 사업에서의 성공
1934년 동아증권을 설립하고 명동에 점포를 열며 증권업계에도 진출했다.
일본인 중매점들과 경쟁하기 위해 전국에 통신망과 연락망을 갖추고 도쿄와 오사카 주식 시장 시세를 빠르게 전달하여 명동 최고의 중매점으로 명성을 얻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미두시장과 증권 시장은 일본인이 주도하고 일본 주식이 주요 종목이었으며,
정보력이나 자금력이 월등한 일본 거래상에 휘둘려 조선인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조준호는 뛰어난 능력과 과감한 투자로 미두와
증권거부가 된 조선인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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