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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95㎝ x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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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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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유년[旃蒙作噩] 국추일(菊秋日)에 진양(晉陽) 강천수(姜天秀)가 지은 우송(友松) 김세규(金世奎) 선생의 경절당 기문[敬節堂記]
◈ 김세규(金世奎, 1538년(중종 33)~1619(광해군 11) : 부평 김씨. 자(字)는 경소(景昭), 호(號 )는 우송(友松).
일세조(一世祖) 환(丸)의 막내아들.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배우고 1582년(선조 15)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정경세(鄭經世)•김선원(金仙源) 등과 도의(道義)를 나누었으며, 임진왜란 때 향교(鄕校)가 소실(燒失)되자 그가 주선하여 복원하였다.
뒤에 교수(敎授)로 천거되어 사도(士道)와 효제(孝悌)를 강학하였다.
저서로 『우송집』이 있다.
고창군 용계리(高敞郡龍溪里) 화양사(和陽祠)에 제향되었다.
강천수(姜天秀, 1863~1951) :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중민(仲民), 호는 거산(巨山),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이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1832년 할아버지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장성으로 이거하였다.
할아버지 강인회의 권유에 따라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경전과 백가서(百家書)를 배우고 익혀서 학문과 문장에 일가를 이루었다.
1897년(고종 34) 종숙인 강해영(姜海永)의 권유로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이사한 뒤 서당을 열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1908년(순종 2) 기우만이 의병을 일으키자 달려가서 도와주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고향에 은거하며 두문불출하고 학문에만 힘썼다.
만년에 제자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암치리 서쪽 계곡에 정자를 지어 거산정사(巨山精舍)라는 편액을 달고 쉴 곳을 마련하였다.
그는 괴이한 재기가 넘치는 호걸로 학처럼 우뚝한 선비였는데, 붓을 들면 물이 흐르듯 하여 다시 다듬어 시문을 꾸미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묘소는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다.
◈ 사진 이미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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