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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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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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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30.5cm 세로123.5cm
대구지역 유명 서화가 석재 서병오 선생님의 멋진 괴석 대나무 동양화 작품입니다.
작품성 좋으며, 귀한 석재 선생님 작품이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흠이 있습니다.
수집된 그대로 등록하오니 사진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일제강점기 교남서화연구회 회장, 조선미술전람회 부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서화가.
본관은 달성(達城).호는 석재(石齋) · 석재거사(石齋居士) · 석과(石果) · 죽서도인(竹書道人) · 청전(靑篆). 영남출신으로 일찍이 군수를 지냈다. 흥선대원군 문하에 드나들며 서울의 문사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1901년을 전후하여 중국 상해(上海)로 가서 그때 그곳에 망명중이던 민영익(閔泳翊)과 친밀히 교유하면서 그의 소개로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중국인 서화가 포화(蒲華)·오창석(吳昌碩) 등과 가까이 접촉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09년도 상해와 일본을 여행하였고,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특히 포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그의 문인화법의 영향을 받은 문기(文氣) 짙은 묵죽(墨竹) 등 사군자를 그리게 되었다. 글씨는 매우 격조 있는 행서(行書)를 남겼다.
대구에 살면서 영남일원의 대표적 서화가로 최대의 명성을 누렸다. 1922년 대구에서 교남서화연구회(嶠南書畫硏究會)를 발족시켜 회장이 된 뒤, 서화연구생들을 지도하였다. 김진만(金鎭萬) · 배효원(裵孝源) · 서동균(徐東均)과 성재휴(成在烋)가 그 시기의 그의 제자이다.
1922년부터 서울에서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鮮展)가 열리게 되자 박영효(朴泳孝)·정대유(丁大有)·김돈희(金敦熙)·김규진(金圭鎭) 등과 더불어 ‘서(書)와 사군자’ 부심사위원을 여러번 역임하였으나 한번도 작품을 출품하지는 않았다. 이즈음부터 서적 출판에 관여하여 출판 편집인으로서 활동했으며, 대구 문인화단의 구심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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