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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24.5×38.5센티 탁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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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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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장 무
'北에는 경허가 있고 南에는 경운이 있다'
라는 불교界 유명한 말이 전해집니다
(물론, 활동 시기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 大宗師 경운 스님의 유물은 사연이 많습니다
<매물 2점 설명>
1. 本 매물인 진감국사비문탁본집의 원 소장자는 경운 大宗師의 애장품이셨습니다(탁본집 겉표지 하단에 초록색 마킹표시
*경운 대선사께서 친필로 직접 묵서하신 '景雲藏' 글씨 참조)
경운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前ㅡ 어르신의 首제자 스님에게 ㅡ 경운 스님께서 직접 專해준 유물입니다
2. 경운 스님께서 졸업,수료 하셨던 함경도안변군 소재 釋王寺 講院 수료증서 1점
/소화 6년 발행
(楊景洙는 경운 스님의 속명이자 또 다른 法名이기도 합니다)
*함경도 석왕사는 구한말, 강점기 때 조선 禪불교의 本山이라 일컬어지는 조선 중추禪院입니다
경운 스님께서 초심,발원하신 佛法의 元鄕寺이기도 합니다
***경운 대종사는 법명을 경운, 청우, 楊景洙를 쓰셨다
●대종사(大宗師) 법계 품수 (조계종 최고의 수행 위계로 천주교로 보면 추기경級에 해당)
1912년 8월 25일 (평남 선천군 태생) ~ 1994년 8월 28일 원적
함경남도 안변 석왕사(釋王寺) 불교전수강원 수료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용맹정진
서울 안국사(安國寺) 주지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경운 스님은 한국 불교의 격동기(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를 거치며 '수행과 교학을 겸비한 정통 수행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셨다.
首제자 스님께서는 경운 스님이 물려주신 소중한
유품이라 당신께서도 잘 보관하고 있다가 향후, 나라 국립 박물관에 불교 문화재로 기증하실 계획이셨으나 首제자 스님께서 末年에 큰 병에 걸리셔 돈이 필요해 부득불, 매물로 내놓으신 걸 구매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본매물 중 하나인 탁본집 배경 스토리로 들어가봅시다
진감국사비문(眞鑑國師碑文)의 주인공
진감국사는.
혜소(慧昭, 774~850)는 774년(혜공왕 10) 전주 금마(현재의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혜소의 은 최 씨이며, 아버지는 창원(昌原), 어머니는 고 씨(顧氏)이다. 그는 6두품 이하의 신분으로 금마 지역의 토호 출신으로 보인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혜소는 부모가 사망한 후인 804년(애장왕 5)에 세공사(歲貢使) 선편의 뱃사공이 되어 당에 유학하였다.
이후 혜소는 창주(滄州) 신감(神鑒)의 문하에서 를 받았고, 810년(헌덕왕 2)에 숭산(崇山) 소림사(小林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당에서 유학 중이었던 도의(道義)를 만나 그와 함께 여러 곳의 선 지식을 찾아 다녔다.
도의가 귀국한 후 혜소는 종남산에 들어가 3년 동안 지관(止觀)을 닦았고,
다시 3년 동안 짚신을 만들며 오가는 사람에게 하였다.
830년(흥덕왕 5) 혜소는 신라로 돌아온다. 귀국한 그는 상주 장백사(長栢寺)에 머물다가
삼법화상(三法和尙)이 머물렀던 지리산 화개곡에 절을 다시 세우고 그곳에서 지냈다.
838년(민애왕 1) 민애왕이 그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혜소는 왕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이때 혜소는 부지런히 선정(善政)을 힘쓰기만 하면 될 것이고 굳이 나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왕에게 답변하였다고 한다.
당시 민애왕은 개혁 정치를 추진하기 위해 혜소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에서 정치적 · 사회적 혼란기였던 신라 하대의 집권층이 새롭게 대두한 선종에 정치적 · 사상적 지원을 기대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후 민애왕은 혜소에게 라는 호를 내리고 황룡사에 적을 올리게 하여 그를 후원하였다.
그후 혜소는 새로이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조계(曹溪) 육조(六祖)의 을 세웠다.
혜소가 육조의 영당을 건립한 것은 선종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혜소는 850(문성왕 12)년에 입적하였다. 886년 헌강왕이 그에게 시호를 으로, 를 대공영(大空靈)으로 내려 그를
혜소는 자신의 문하에서 하나의 선문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정진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의 에 희양산문(曦陽山門)의 지증대사 이
자신의 법계를 고쳐 혜소의 법맥을 이었다고 적혀 있으므로 혜소의 영향이 일정 정도 후대에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비문 외에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혜소가 가졌던 선 사상을 뚜렷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당에서 유학하던 혜소의 스승이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신감이므로 혜소 역시 마조선(馬祖禪)의 본령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唐代) 선을 대표하는 마조 도일의 선 사상은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이며, '일상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마조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마음이 그대로 도이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곧 '일상의 모든 행위가 불성이 드러난 것[作用卽性]'이라는 관점이다.
이와 같이 수행이 필요 없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사고 방식은 '현실의 모습 그대로를 이상적 상태로 간주하는 평상무사(平常無事)'의 사상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마조선의 핵심 사상은 마조 도일 문하의 선승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의 대부분이 이러한 마조선을 계승하였다.
혜소의 비문에 그의 청빈한 일상 생활이나 누구든지 평등하게 대한 그의 자세 등이 주로 서술된 것은 혜소의 선이 지향했던 바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편 혜소는 당에 유학하여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도입하였고, 중국의 차 문화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가 수용한 범패는 종래 신라에서 향유하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갈래의 음악이었다.
이는 혜소가 범패라는 불교 음악을 통해 대중 교화를 실행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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