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수화 거장 황빈홍(黄宾虹) 민국원장 청록산수화
작품부분크기 42x68cm , 원장비단배접 전체크기 53x98cm
거장 황빈홍(黄宾虹,1865-1955)은 산수화로서는 근대화단에서 당할 자가 없다며
중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산수화 일대종사(山水画一代宗师-세기의 거장,큰 스승)라는,
최고 화가로, 근대화가 중 필력으로 견줄 인물은 제백석(齐白石1864-1957年)뿐이라며
남황북제 “南黄北齐”(남쪽에는 黄宾虹,북쪽 齐白石)로 불리는 근대산수화 최고대가입니다.
이 작품은 설명이 필요없이 황빈홍 노년기의 부드러운 필선과 발묵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민국시대 후기의 격조높는 청록산수화작품입니다.
황빈홍의 노년작은 선과 발색 농도에서 초기,전성기와 구별이 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작품은 황빈홍 작품 중에서도 빼어난 노년 전성기 작품입니다.
황빈홍 후기와 말년작들은 선과 발색에서 초기 전성기와 눈에 띠는 차이가 있어
일명 백빈홍, 흑빈홍(白宾虹 黑宾虹)으로 불리며 구별되기도 합니다.
말년인 80대 후반까지도 활발한 사회활동과 작품활동을 계속한 황빈홍은
91세 작고하기 전까지도 부단히 창작한 산수화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어
말년작의 특징을 쉽게 볼 수 있어 전성기 작품들과 비교가 수월한 상태입니다.
민국시대 후기의 본 작품도 황빈홍 노년기 특유의 청록산수 화풍과 필선에,
노련함과 발묵의 심오함이 더해져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빼어난 작품으로,
발묵이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며 용묵대사(用墨大师)로 불리우는 황빈홍의
거침없는 선과 발묵이 명암이 되고 원근이 되어 표현한 명품산수화입니다.
작품 테두리의 민국 송금(송나라형식의 비단) 표구 형태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오래된 입식유리액자(단독 병풍액자)에 보존 감상되던 작품으로
현재는 액자에서 분리하여 비단테두리 배접표구형태로 보관하고 있으며,
유리액자에 잘 보존되어 곱게 나이를 먹었습니다만, 종이 등 재질 상태에서
정갈하면서도 은은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매우 빼어난 고미술작품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본 작품과 같은 형태의 청대 민국시대에 명품서화를
전시 감상하던 당대 고급 입식(단독병풍식)유리액자 참고사진입니다.
경매사진 이미지에 작품상단 등 곳곳에 얼룩같은 그림자들이 보입니다만
플랫쉬광선이 굴곡에 닿은 그림자일 뿐 실제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아랫쪽 작품 뒷면 사진에 보이듯, 유리액자에서 꺼내 오래 보관하다보니
오래된 원장비단배접 뒷면의 풀칠부분이 건조하거나 습함에 따라 팽창수축하여
작품과 배접부분의 재질의 차이로 일시적으로 우는(굴곡이 생긴) 현상일 뿐입니다.
이같은 경우는 따로 평평하게 펴는 작업이 필요없이,
액자를 꾸미며 유리에 완전 밀착만 되어도 완벽하게 평평해지는 경우입니다.
실제 작품에서는 사진에 보이는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자연스런 미황색의 고른 변색으로 매우 단아하고 정갈한 작품바닥입니다..
본 작품의 또 다른 감상포인트는, 작품 우중간 아랫부분 강가 잔도에서
배를 끌고 있는 세명의 인물, 즉 섬부(纤夫 - 縴夫)라는 인물들입니다.
황빈홍 전성기 전형적인 인물표현 형태를 그대로 보이고 있는 부분으로
자세히 보면 이 장면은 닻을 내리거나 정박하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지금은 사라졌습니다만, 섬부는 고대 강이나 운하 등에서 발달했던 수운(해운)에서
필수적인 인물들로 배가 험준한 협곡이나 급류 구간 등을 지날 때 이들의 도움으로
험지를 벗어나 물자를 안전하게 운송하던, 전통적이고 필수적인 직업군이었습니다.
지금도 장강(양쯔강)이나 천강 대운하 등지에는 섬부들이 일하던 지점을 표시하던
섬부석과 잔도의 움푹 들어간 곳 등 섬부와 작업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다 합니다.
경매문의중 영인본,인쇄본 여부에 관한 문의가 가끔 있습니다. 영인본은 작품이 아닙니다.
복제공예품,혹은 인쇄품으로 표기해야 하며,영인본을 작품이라고 절대 표기할 수 없습니다.
따로 설명이 없더라도 판매자의 모든 원본경매작품들은 영인본, 인쇄본이 한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