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 최고 서양화가 판위량(潘玉良,반옥량) 1972년 복합수분화 목욕하는 여인
작품부분크기 29x45cm , 원장배접크기 39x54cm
중국 근현대 최고의 서양화가로 꼽히는 판위량(潘玉良,반옥랑,1895-1977)은
1921년 27세 나이에 프랑스 리옹국립미술대학에 유학, 발군의 실력으로
2년만에 파리국립미술원 졸업 후, 다시 2년만인 1925년 이탈리아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최고의 성적과 실력으로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학업을 마치게 됩니다.
그녀는 지금도 이탈리아 국립미술원 자료에, 장구한 학부역사상 최고 성적과 실력을 지닌
졸업생으로 기록되어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그녀가 평생 작품활동을 하던 프랑스에서는
그녀를 20세기초 프랑스 유명작가로 부르며, 각종 훈장과 작위를 수여하였습니다.
판위량은 이미 1920년대부터 서구에서 큰 주목과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누드, 정물화 등 서양화에서 동양의 정취가 어우러진 작품들을 창작하며 찬사를 받습니다.
중국 미술사에서도 판위량은 민국시기' 최고의 여류서양화가'가 아닌
중국 근대미술사' 최고의 서양화가'이며 서구에서 더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역시 민국시대 중국화 최고봉이 제백석인지라 곧잘 두 사람을 비교해
"중국화는 제백석, 서양화는 판위량"이라고 말해지는 작가로
워낙 유명해 그녀의 이야기가 드라마로,영화로 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민국시대 장대천은 그녀를 따르고 존경해 늘 "潘大姐"(반누님)라고 불렀으며
가끔씩 대풍당(장대천의 화실)에서 그녀와 중국화 작업을 하기도 하며,
당시에 판위량의 중국화재료로 그린 서양화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으며,
장대천역시 그녀의 영향을 받아, 작품에 명암,색채 등 서양화적 요소가 더해져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과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합니다.
민국시대 미술계는 제백석,판위량에 뒤이어 장대천,서비홍의 시대가 이어지게 됩니다.
본 작품은 1972년, 일흔일곱살이던 판위량의 노년작입니다만,
누구라도 한눈에 판위량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작품으로,
전성기의 강열한 터치와 색감보다는, 유려한 실루엣과 필선이 뺴어난 작품입니다.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인 그녀의 많은 누드작품들 중
노년작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전성기에 비해 약간 더 구상적인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명은 '玉良72'이며, 낙관은 그녀의 상용낙관 중 하나인 '玉良畫'입니다.
이 낙관은 반옥량이 가장 많이 사용한 '潘大姐'(반대저-반누님)란 상용낙관과 함께
민국시대 장대천이 전각을 하여 반옥량에서 선사한 낙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 뒷면 70년대 검정 원배접지는 원래 두꺼운 황색 양지계통의 종이입니다만
당시에는 검정백판이 흔치 않았는지 황색종이 앞면을 검정색으로 직접 칠한 후
그 위에 작품을 얹어 액자나 패널용 백판(배접지)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을 처음 입수한 화랑에서 액자나 패널로 꾸미며 검정배접지를 붙이고
배접지 좌하변에 소장낙관을 찍어 액자나 패널로 꾸며 전시하였거나,
혹은, 검정배접지에 작품과 같은 계통의 흰색물감이 묻은 것으로 미루어
작품창작당시 반옥량 본인이 배접지를 만들어 붙인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경매문의 중 영인본,인쇄본 여부에 관한 문의가 가끔 있습니다. 영인본은 작품이 아닙니다.
복제공예품,혹은 인쇄품으로 표기해야 하며,영인본을 작품이라고 절대 표기할 수 없습니다.
따로 설명이 없더라도 판매자의 모든 원본경매작품들은 영인본,인쇄본이 한 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