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월요일 ~ 일요일까지 입금완료일부터 배송완료일까지의 평균 소요 일수를 기준으로 합니다.
배송완료 건이 비정상 거래로 판단되는 경우, 집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 물품 크기 | 14.9×21.2cm. 184쪽. |
|---|
| 제조국 | 한국 | 연대 | 1945년~1959년 |
|---|
▒ 14.9×21.2cm. 184쪽. 세로쓰기의 양장책이다. 167-8쪽 한 장이 낙장이다.
▒ 단기4290년(1957년) 대구 문예홍보사에서 간행한 손세창 편집/발행, <殉國烈士李漢應先生遺史>이다. 간기에는 반포처가 '순국열사 이한응 선생 기념비건립회'로 되어 있다. 앞 면지에 "敬呈"이라는 증정 고무인이 있고 뒤쪽 면지에는 2005년도의 관련 스크랩이 끼워져 있다.
내표지 뒤에 "존영" 사진과 묘지 사진이 있고 이승만, 장면 등의 휘호와 교지 등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은상의 <서>에서는 "내 발이 지금 그 어른들의 피를 밟고 섰고 내 몸둥이가 바로 그 어른들의 피를 깔고 누웠으며, 그 피의 덕분으로 지금 먹고 마시는 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라고 추모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목차>에 이은 본문은 먼저 약전(이병도), 묘갈명(박문식), 묘지명, 순국기념비문을 실은 1권부터 이한응 선생의 유서와 유묵, 사마응시 부, 주영공사관일지 등의 기록을 실은 2권에 이어 <고종실록>, <한국통사>(박은식), <매천야록>(황현), <기려수필> 등에 실린 기록, 고종의 치제문, 초혼사와 추도사, 만장, 추모시와 사서의 기록 등을 실은 5권까지로 나뉘어 있다. 뒤에 편자인 손세창의 발로 뛴 노고를 치사하는 유일지의 발문이 있다.
국은(菊隱) 이한응(李漢應:1874-1905년)은 관립영어학교를 나오고 광무5년(1901년) 주차영의양국공사관 참서관으로 임명되어 영국으로 갔다가 1905년 영국공사 서리로 노일전쟁 후 일본과 영국의 조약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전무쌍함을 보고 을사조약 5개월 전인 5월에 마지막 사진을 촬영하고 "모든 교섭에 망극한 치욕을 혈기있는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구나. 종사가 빈터만 남고, 민족은 노예가 되고야 말 것이다. 구차히 살아본댓자 욕만 늘어갈 것이니, 차라리 한번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 낫겠다"며 음독자결하였다. 민영환의 자결보다 몇 개월 전이었다. 편자는 추모시를 '강호제현'에게서 받아 싣기도 했으니, 특히 심산 김창숙 선생의 차운시도 수록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 나머지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영수증발행 : 온라인현금영수증(소득공제용 / 지출증빙용)
영수증신청 : 수령확인시에 개인소득공제용 또는 사업자회원님의 지출증빙용(세금계산서대체)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주)코베이옥션에 등록된 상품과 상품내용은 개별 판매자가 등록한 것으로서, ㈜코베이는 중개시스템만 제공하며 해당 등록내용에 대하여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판매자가 사업자회원이 아닌 개인회원의 경우 판매자 정보는 [코베이옥션 결제처리] 이후 판매자의 연락처 등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즉시 제공하게 됩니다.
코베이옥션은 구매안전서비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