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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1x1x1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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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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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저명 삽화가 서비홍제자 중국화가 미오디(苗地) 1959년 수채인물 크로키
작품부분크기 27x38cm
세계적인 삽화 일러스트작가이자 중국화작가인 미오디(苗地묘지,1926-2017년)는
오랫동안 중국 국영 인민일보 삽화 및 편집주간(人民日报社高级编辑)을 역임하며
냉전시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의 주요 축이던 서방의 저명삽화가들과
서로의 진영을 펜과 붓으로 풍자 때로는 비방하며 서방세계에더 명성을 떨친 인물로,
중국 최고미디어 인민일보에서 최장기 편집주간을 맡았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이념이나 정치 정책적으로는 서방 예술과들과 때로는 살벌한 대립을 벌였지만
풍자와 여유가 바탕에 깔린 삽화 일러스트의 예술가라는 교감이 바탕에 있어
미디어 국제회의 등에서 서방의 저명작가들과 친밀한 교류를 나누었다 합니다.
묘지(苗地)라는 그의 이름이 우리 발음으로는 묘지, 무덤이 떠오르지만
실제 원래 뜻은 전혀 반대로 새싹苗(새생명)이 움트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의 검색자료에 저명만화가,중국화가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만
중국에서는 만화라는 개념은 우리와 달리, 만화는 삽화 일러스트입니다.
그는 국립북평예전이 개명을 하며 중앙미술학원으로 창설되던 초창기, 1949년
화북대학에서 미술심화연구과정을 밟던 중, 다시 국립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하여,
당시 새로운 인물화풍를 개척하던 서비홍과 장조화에게 인물화와 소묘를 배웠으며
인물크로키대가 엽찬여에게 크로키를 사사받아 중국화와 서양화를 섭렵하였습니다.
본 작품은 1959년작으로 스승 엽찬여의 필선이 떠오르는 크로키 인물화입니다.
삽화의 특성상 미오디는 매우 많은 작품을 창작했으며, 주로 문화혁명시기부터
1970-80년대에 창작한 엄청난 삽화와 소묘,일부 중국화작품들이 남아있습니다만,
문화혁명 이전 작품들은 남아있는 것이 매우 보기 드물며, 특히 이같은 오리지날
서양화 수채화 인물크로키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희귀아이템입니다.
가끔 '왜 서양화에 낙관 인장이 찍혀있냐?'는 문의가 있습니다.
명나라부터 시작된 중국의 서양화는 청말 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민국시대 당시 작가들은 대부분 서양화에 서명과 낙관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특별한 규칙이나 관례가 아니라 그동안의 중국화적 습관이 이어진 것이며
소묘,수채화는 물론 유화에 까지 낙관을 찍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서비홍의 보기드문 분마도 캔버스 유화작품 한구석에 낙관이 찍힌 예처럼
민국시대부터 1970-80년대 까지 많은 서양화작가들이 소묘나 수채화 등에
낙관을 사용했으며 그 전통이 현재까지도 일부 작가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명청시대에도 중국에서는 낙관이나 서명 등에 비교적 자유롭고 관용적으로
우리처럼 절대적인 규칙같이 일정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와 마지막 사진은 액자 등을 꾸민 경우를 가상한 가상액자이미지입니다.
현재 작품은 두번째 사진처럼 뒷면에 가배접 보강된 상태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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