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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24.3×34.4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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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연대 | 1980년~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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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3×34.4cm. 쪽수 없이 40장 가까이 된다. 세로쓰기 책이다.
▒ 1987년 선문출판사에서 발행한 소봉선생기념사당건립추진계획/ 박박식 편집, <書聖 王羲之 書 眞墨筆>이다. 표지에는 '서성진적필'이란 말과 함께 네모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晉 王羲之 十七帖>이란 제목을 쓰고 좌측 하단에 다른 수록내용인 "구양순 구성궁예천명/ 석파 대원군/ 심전 안중식/ 소봉 나수연 / 취석 정석주"라고 적었다.
서문의 설명을 보면 인류 서도문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편집했다며 "당태종이 정관이라는 재위연호로 확인시킨 세상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우장군 서성 왕희지의 초서지묵 진적필"이라고 하였고 중국도대최고예술품이 우리나라에 존재하여 발굴하는 것이란 말을 하였다. 또한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여태것 알려진 작품중에 가장 상태가 뚜렷하여 서도계의 경사"라며 광서연간(1882년)에 황자원이 임모하여 발간한 것을 발굴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유물의 칼라도판 등을 수록하였고, 이중엔 중국 금성나씨 소장본인 <고전> 필사본과 조맹부의 <송철첩>도 보인다. 차례 없이 바로 도판이 이어진다.
초서첩인 <왕희지 17첩>은 "석실장본"이란 표기와 함께 글자 우측에 해서 탈초가 함께 실린 모각본이다. 쪽마다 테두리 안에 3행씩 실었다. <구성궁예천명>도 앞의 백서 사진과는 달리 묵서로 실었고 가로세로 계선 안에 쪽마다 4행에 7자씩 실었다.
그 다음은 부록 격으로 소봉 나수연(羅壽淵)의 사진과 함께 그와 관련된 유묵으로 연표와 함께 석파 대원군이 휘호해준 "소봉산방" 글씨, 심전 안중식이 써준 휘호, 1942년의 소봉 필적, 그리고 소봉과 만난 취석 정석주의 12점 산수화 그림들이 이어진다. 소봉은 황성신문에서 장지연 남궁억 등과 함께 언론활동도 하였다고 소개하였고, 동아일보 1921년 자료라며 소개한 연표엔 총독부중추원 참의를 지냈다고 하였다. 1926년 이후 죽었다고 가장을 지내고 남도로 떠돌다 82세인 1942년의 생존사실까지 발굴하였다는 말이다.
▒ 상태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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