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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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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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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규격 : 가로69 세로25.2(cm)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이신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선생이
청음 김상헌선생께 보내는 친필 편지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乙酉五月二十二日 恩津宋時烈 謹沐再拜書 (을유 오월 이십이일, 은진 송시열 근목재배서)
을유년(1645년) 5월 22일, 은진에 사는 송시열이 삼가 목욕재계하고, 두 번 절 올리는 뜻으로 글을 씁니다.
請納再拜之禮於淸陰老先生座下(청납재배지례어청음노선생좌하)
두 번 절하는 예를 받아주시기를 청하며, 청음(淸陰) 노선생의 좌하에 삼가 바칩니다.
小生今去黙孤之歲有三有九矣(소생금거묵고지세유삼유구의)
소생은 이제 말없이 고독히 지내는 나이 서른아홉에 이르렀습니다.
自有事以來偏宿望於盥人走卒之口(자유사이래편숙망어관인주졸지구)
그 일(변란)이 있은 뒤로는, 항상 관원이나 하인들의 입을 통해서만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리워했습니다.
望則惟 皆日今日有山斗之望(망즉유개일금일유산두지망)
그리움이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오늘에 이르러 북두성처럼 높이 우러르는 분을 뵙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惟有淸陰大爺也(유유청음대야야)
그분이 바로 청음 대인(김상헌)입니다.
然而生長東南 足跡罕以來之意(연이생장동안 족적한이래지의)
그러나 저는 평생 동남(충청)지방에서 자라와, 발걸음이 드물었던 탓에 찾아뵐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而又使知孟子之路(이우사지맹자지로)
또한 맹자가 걸었던 은둔과 절의를 지키는 삶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不我欺則先生之賜大矣(불아기즉선생지사대의)
만약 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선생께서 내려주실 은혜가 클 것입니다.
謹以書先于將命者而立于門屏之外以候進退焉(근이서선어장명자이립어문병지외이후진퇴언)
이에 삼가 이 편지를 먼저 전할 장명자(편지를 전할 심부름꾼)에게 맡기고,
대문 안쪽의 가리개 밖에 서서 허락하시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돌아갈 것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侍下生 宋時烈上書(시하생 송시열상서)
좌하에 모시는 제자 송시열이 삼가 올립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1645년, 송시열 선생이 39세 시절에 적은것이며
송시열 특유의 긴 장체와 강한 필압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청음 김상헌(金尙憲, 1570~1652)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의 영수,
병자호란 당시 주전론을 주장했고, 청나라와의 화의를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인조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 후학 교육과 문인 교유에 힘쓴분이십니다.
두 사람 모두 성리학적 대의명분과 절의를 중시하였고.
특히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척화 사상 공유하였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김상헌은 심양에 끌려가 항의하다가 귀국 후 은거하였을때,
송시열은 젊은 나이에 김상헌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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