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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21.5×35센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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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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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찰되었군요
좋습니다 가격을 확 낮추어 다시 시작해봅시다
황기로 초서 글씨는
***본매물은 황기로 탁본첩입니다***
조선 全書藝史에 걸쳐 草聖이라 불릴만큼 초서에 관한한 조선서예史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황기로는 1534년(중종 29)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부친 황이옥이 남곤(南袞) · 심정(沈貞)의 사주를 받아
신진 사림의 거두 조광조(趙光祖)를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 사판(士版)에서 삭제된 일로 인해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조부 황필의 유지를 받들어 고향 선산(善山)에 위치한 고산(孤山) 언덕에 매학정(梅鶴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글씨와 술로 일생을 보냈다.
‘고산’과 ‘매학정’이라는 아호는 중국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렸던 북송(北宋)의 은둔 시인 임포(林逋)의 처사적 삶을 동경한 데서 온 것이다.
황기로는 ‘조선의 초성’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에는 그를 따라갈 자가없었다고 한다
특히 술과 관련된 일화가 많아 취흥을 빌려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종종 전해진다.
이는 당(唐)의 광초(狂草)로 불린 초서 명가들의 자유롭고 방일(放逸)한 태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실제 그의 글씨에 장욱 · 회소와 명대의 초서 명가 장필(張弼)의 서풍이 적극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 간의 유사성과 영향 관계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초서풍은 사위 이우를 포함하여 이산해(李山海), 이지정(李志定) 등에게 전해지며
조선 중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세속을 멀리하며 유유자적 살다 간 처사로서의 삶과 함께 당대 및 후대인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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