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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18×26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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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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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6cm이나 하책의 폭이 약간 더 넓다. 상책91장(예언1장+1권38장+2권52장) + 하책3권84장. 노루지에 신활자로 인쇄하였으며 문양이 있는 배접지를 표지로 삼아 가는 끈으로 5번 묶은 선장본이다.
▒ 표지 좌측 상단에 <朝鮮史略 上>이라는 제첨이 별지에 인쇄되어 붙여져 있고 下책도 마찬가지다. 하책 끝에 경성부 운니동 1번지 김종한 자택에서 대정 13년(1924년)에 발행한 김종한 저작이라고 하였다.
표지 뒷면에 붓으로 "조극전(肇極殿) 건축비에 보조키 위하야 구람(購覽)하심을 요함"이란 말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거기에 방인으로 "조극전봉건기성회인(肇極殿奉建期成會印)"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 조극전이란 고종황제의 어진을 모시기 위한 건물이었는데 1924년에 모금을 시작하여 기부금 방식으로 하라는 당국의 통제도 받았다는 기사도 있었으나(동아일보), 1928년 순종 어진까지 함께 봉안한다는 중외일보의 5월 11일자의 기사에 건물사진도 실렸었다. 이러한 내력은 김종한에 대한 아래 설명을 보면 납득이 될 것이다.
서문이나 목차는 없고 <조선사략범례> 11항목이 있다. 이 책은 김종한(金宗漢:1844-1932년)이 저술한 편년체의 역사서로 전체 3권 2책이며,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고려대학교도서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주자(朱子)의 <통감강목(通鑑綱目)> 서술방식에 따라 단군에서 조선시대 순종의 즉위에 이르는 역사를 <범례>에도 밝혔듯이 <동사찬요(東史纂要)> 등을 참고하여 강목체(綱目體)로 서술하였다.
권1에 단조기(檀朝紀), 조선기(朝鮮紀), 마한기(馬韓紀), 백제기(百濟紀), 신라기(新羅紀)를, 권2에 고려기(高麗紀), 권3에 조선기(朝鮮紀)를 실었다. 앞의 '단조기'는 단군조선이고 '조선기'와 '신라기'는 각각 기자조선과 통일신라를 다룬 내용이다.
서술방식은 간지(干支)를 먼저 명기하고 이어 왕의 재위년을 적고 강(綱)·목(目)·안(按)은 각각 글자의 크기를 달리하였다. 체재에서 보듯이, 단군조선·기자조선, 그리고 위만(衛滿)에게 왕위를 빼앗긴 준왕(準王)이 마한으로 옮겨감으로써 기자에서 마한으로 정통이 이어진다는 조선 후기 이익·안정복 등 실학자의 정통론을 따랐다. 그러면서도 종래의 근기학파(近畿學派) 계열의 실학자들이 기자 이후 마한에서 신라 문무왕 9년으로 정통이 계승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한 멸망 이후 삼국시대를 무정통의 시대라고 하였던 데 비해, 마한을 백제가 잇는다고 하여 정통을 마한·백제·통일신라에 둔 점이 기왕의 사서와 다른 점이라고 지적된다. '마한기'에 이어 '삼국기'가 소항목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정통을 백제에 두었기 때문에 독립된 기(紀)로 만들지 않고, '백제기'에서 고구려와 신라 왕의 재위년을 부기하는 데 그쳤다. 정통이 백제에서 신라로, 다시 고려로 이어지는 관계로 그 뒤의 역사적 계승이 없다고 보는 발해는 우리의 역사범주에 넣지 않아 서술에서 제외되어 있다.
'고려기'에서는 우왕과 창왕을 폐왕(廢王)으로 표기하고 안(按)에 공양왕이 살해되었다는 설을 비판하였다.
'조선기 중에서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 재위년을 적지 않고 간지로만 표시하였으며,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인조 때 추존된 원종(元宗)이 광해군 뒤에 넣어져 있다. 그 밖에 추존된 영조의 맏아들 진종(眞宗)과 둘째아들인 장조(莊祖), 그리고 순조의 아들인 문조(文祖)가 각각 정통론에 입각하여 역대 왕으로 실려 있다. 고종은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뒤의 명칭인 태황제(太皇帝)로 기재하고 있으며, 1907년을 조선기의 마지막으로 보고 이해 고종이 양위한 사실을 끝으로 하여 순종에 대한 기록은 책의 서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책이 간행되는 시점인 1924년에 순종이 아직 생존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1895년의 을미사변을 기술한 대목을 보자. "8월, 대대장 우범선 이두황이 훈련대병을 인솔하고 건청궁 곤녕합을 범하자, 중궁전(中宮殿)이 해를 당하게[遇害] 되었고 궁내대신 이정식, 연대장 홍계훈이 죽었다"고 사실을 전했으며, 주석의 말에는 "범선이 참하고 건청궁 후문으로 들어가 병사들을 지휘하여 곤녕합에 이르러 칼을 빼들고 앞서며 계단으로 올라가니, 궁대(宮大) 이정식이 문에서 거절하며 물러가라 꾸짖거늘, 범선이 선 채로 참하였다. 잇따라 문빗장을 밀치고 바로 옥호루를 범하여[排달直犯] 중궁전은 졸지에 해를 당하였으며, 잔악한 화염이 하늘에 가득 넘쳐났으니[虐焰滔天] 옥체 또한 온전히 돌아가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 계묘(광무7년,1903년) 조에는 "전병사 고영근이 을미에 국모를 시해했던 역괴(逆魁) 우범선을 일본 광도현(廣島縣)에서 참하였다"는 말이 들어가 있다.
결국 이 책은 전통적 주자학적 정통론의 명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과거 사서와 실학자들의 역사관을 참고로 하여 저자의 색다른 정통론이 들어 있어 주목되는 역사서라고 하겠다.
[김종한] 저자의 본관은 안동, 자는 조경(祖卿)이며 호는 유하(游霞)로 서울 출신이다. 판서 계진(啓鎭)의 아들로서 경진(敬鎭)에게 입양되었다. 순종비 윤씨의 숙부이며, 친일파였던 윤덕영(尹德榮)의 외사촌형으로 친일문신이었다. 1894년 김홍집 내각의 군국기무처에 들어갔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일본측의 추천에 의해 궁내부협판이 되었으며 1896년에는 독립협회운동에 위원으로서 적극 참여, 관직에 있으면서 경강상인(京江商人)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대금업을 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은행, 철도회사 등에도 관여하였고, 1910년 합방 전에는 이완용의 지시로 친일단체 정우회(政友會)의 총재직을 맡고, 그 공로로 일제의 한국 국권 침탈 이후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 상책은 모서리만 약간 접힌 정도이며, 하책은 앞표지 제첨부분이 다소 상했으며 뒤표지는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나머지는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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