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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19.3 x 30.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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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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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조은 두터운 다듬이 장지에 1766년 교서관인쇄체자 철활자로 간행한 문집
잠야선생문집 1권~2권 1책 조선중기 유학자인 잠야 박지계선생의 문집은 원래 1~10권
5책이 완질이나 경매올린 물품은 1권~2권 소 내용실린 첫책인 1책으로
상태 사진참조바라며 낙장없으며 1권은 아무흠없이 아주최상 2권 1~3장 적게 4~7장 중간부분 얼룩 8장은 옅게얼룩
2권 내용 34장부터 42장 오행 20자부분 약간 훼손되게 좀슬었으나 내용은 확인가능하며 그외는 아주최상이고
뒷표지 하단부 쬐금 좀슨부분 사진참조와 2권 내용 34장부터 마지막 좀슬은부분 내용추가로 사진올리니 필히 참조 바랍니다
박지계선생(1573~1635년) 본관 함양 자는 인지(仁之) 호 잠야(潛冶) 父 군수 박응립 어머니 전주이씨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면서 논어를 탐독해 장차 대유(큰유학자)가 될 이상을 갖추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충청도
제천으로 피난 정유재란때에는 괴산에 우거하면서 어머니의 병환을 극진히 간호했으며 1606년 이조판서 허성이 왕자사부로 천거
했지만 나가지 않았으며 1609년 옥당의 최현이좌세마겸 서연관으로 천거했지만 사양했다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권흥,조익등과
도학을 강론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왕의 부름으로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다 박지계는 당시의 과거제도의 폐단을 논해 주자의
덕행과 조광조의 현량과 율곡 이이의 선사법등이 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훌륭한 제도라고 진언하였고 박지계는 예론에 관한 의견에서
조정의 중신들과 대립되자 잠시 남양에 우거하다가 이괄의 난때 공주로 내려가 왕을 호종하였으며 수복후 김장생과 같이 한양으로
돌아와서 양민치병의 계책을 상소 했으며 이이와 성혼의 문묘종사를 주창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사서근사록의의, 주역건곤쾌설,및 잠야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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