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 데일리경매 02-738-1268 (평일 10:00 ~ 17:00)
- 삶의흔적경매 02-738-0552 (평일 10:00 ~ 17:00)
- 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입니다. (점심 12:00 ~ 13:00)
물품 크기 | 20.3 * 24.3 cm | ||||
---|---|---|---|---|---|
제조국 | 조선 |
화면 참조.
오진영(吳震泳 1868-1944) : 한말의 유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석농(石農), 아버지 기선(驥善)과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충청북도 진천(鎭川) 외가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전우(田愚)를 처음 만난 후 스승으로 섬겨 호서지역의 대표적 전우 문인이 되었다. 그는 27세 때 동학도(東學徒)에 붙잡혀 고문을 받으면서도 굽히지 않았고, 일제 말기인 71세 때 형사에게 체포되자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항거하할 만큼 자신의 기절을 지켰다. 1905년 그는 일본의 불의(不義)를 규탄하는 〈포고천하문 布告天下文〉을 지었고, 일본이 국가간의 공법(公法)을 어긴 죄를 문책해 각 국 공관(公館)에 호소하는 글을 지었다. 그는 〈기분 記憤〉을 지어 3.1운동때 일제(日帝)의 잔인함에 울분을 기록하였다. 또한 조긍섭(曺兢燮)의 〈복변 服辨〉에서 망국(亡國)의 임금인 고종(高宗)을 위한 상복을 거부하자, 그는 조긍섭의 입장을 반박하는 〈변복변 辨服辨〉을 지어 고종을 위해 상복을 입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당시 유교를 비난하는 주장에 맞서 유교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다. 1920년 권덕규(權德奎)가 동아일보에 글을 실어 공자와 함께 유림의 부패된 의식을 비판하자 〈경고세계문 敬告世界文〉을 지어 항의하고, 1931년 이인(李仁)이 공자를 비난하는 글을 싣자 동료 문인들과 함께 적극적인 성토에 나섰다. 스승의 문집인 ≪간재사고 艮齋私稿≫의 간행을 추진하다가 문인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전우의 행장(行狀)을 짓는 등, 스승을 높이고 학통을 수립하는 데 진력하였다. 1944년 음성(陰城) 망화재(望華齋)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문인들이 안성(安城) 경앙사(景仰祠)에 배향하였다. 석농집(石農集)이 있다.
영수증발행 : 온라인현금영수증(소득공제용 / 지출증빙용)
영수증신청 : 수령확인시에 개인소득공제용 또는 사업자회원님의 지출증빙용(세금계산서대체)으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판매자 ID | kijun2000 | 사업자구분 | 면세사업자 | 대표자 | 기** |
---|---|---|---|---|---|
상호 | 타*** | 사업자등록번호 | 432******* |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0-서울은평-0843 호 |
전화번호 | 010********** | ki********************* | |||
영업소재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749-11 (대조동, 아이안빌) ***************** |
코베이옥션은 구매안전서비스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입사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