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품 크기 | 미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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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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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와당문[瓦當文]
작품 사이즈 : 30 x 32 < 작품성 높은 작품 >
-한자 해석-
申氏以爲 (신씨이위) 瓦質恢宏 (와질회굉)
異于常制 (이우상제) 疑爲漢宗 (의위한종)
廟瓦按黃 (묘와안황) 載太上 (무재태상)
皇有寢廟 (황유침묘) 園以及衛 (원이급위)
思后皇祖 (사후황조) 悼考皆有 (도고개유)
廟園廟曰 (묘원묘왈) 奉明與永 (봉명여영)
奉意相合 (봉의상합) 則以爲廟 (즉이위묘)
殿瓦可也 (전와가야)
惺齋仿 (성재방)
신씨(申氏)가 생각하기를,
기와의 바탕이 크고 굉장하여 일반적인 제도와는 다르니,
한나라 종묘의 기와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살펴보건대 황무(黃武) 연간에 태상황(太上皇)의 침묘(寢廟), 원(園), 그리고 위(衛)를 두었고,
사후(思后), 황조(皇祖), 도고(悼考)에 모두 묘(廟)와 원(園)이 있었는데,
묘의 이름을 ‘봉명(奉明)’과 ‘영봉(永奉)’이라 하였다. 이 뜻과 서로 부합하니,
곧 (이것을) 종묘나 대전의 기와로 여기는 것이 옳다.
성재(惺齋)가 모방하여 쓰다
김태석(金台錫)
김태석(1875~1953)의 호(號)는 성재(惺齋)요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위창과 더불어 근대 한국 전각계의 쌍벽을 이룬 성재는
일찍이 청국(淸國)과 일본에 만유(漫遊)하며 많은 묵연(墨緣)을 맺었으며
귀국 후에는 ‘대동한묵회(大東翰墨會)’를 조직하여
전람회를 여는 등 서예와 전각을 통해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는 각 서체에 능했지만 특히 전서에 뛰어났으며 전각에도 전념하여
한국의 등석여(鄧石如)라는 별칭이 있다.
성재는 중국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15년(1908~1923)동안 체류하면서
전각에 전념하여 3 만과(萬顆)에 달하는 공사인(公私印)을 각(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38세에 되던 해인 1913년에는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總統)이었던 원세개(袁世凱)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국무원 비서직으로 있으면서 옥새(玉璽)를 비롯한 많은 인장을 각(刻)하였다.
성재의 인예(印藝) 중 가장 특색 있는 것은
선대(先代)의 많은 전각들이 측관(側款)을 남기지 않는 반면
성재는 측관을 잘하여 남겼으니,
이는 그가 이미 청년시절부터 중국을 내왕하며 견학한 결과의 산물이다.
성재의 인흔(印痕)은
<남유인보(南遊印譜)> · <동유인보(東遊印譜)>
<성재재중전각인영집(惺齋在中篆刻印影集)>
<승사인보(乘槎印譜)> · <새인도고인집(璽印圖攷印集)>
<원세개총통사장인집(袁世凱總統私章印集)>
<중화각부현인문집(中華各府縣印文集)>
<청유인보(淸遊印譜)> · <수명루인보(水明樓印譜)> 등의
여러 인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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