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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품 크기 | 38.5 *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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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국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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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을 추서받은 경북 예천 출신 독립운동가 박규수(朴珪洙)의 신유년 간찰
-박규수(朴珪洙, 1881-?): 1881년 7월 7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이명으로 규연(珪衍)을 썼다. 유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 4월 경북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은 예천 권씨 종손인 유림 권석인(權錫寅)이 주도하였다. 권석인은 1919년 2월 29일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고향 용문면 죽림동(竹林洞)으로 내려와 6촌 형인 권석호(權錫虎)를 찾아가 만세운동을 논의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예천 장날인 3월 12일을 의거 날짜로 정하고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는 한편, 독립선언서를 여러 장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면서 부득이 날짜를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연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망에 포착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두 번이나 거사가 미뤄지자 권석인 등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4월 3일 급히 연락을 돌려 만세운동을 실행할 것임을 알렸다.
-1919년 4월 3일 밤 9시경 죽림동에서 권석인을 비롯한 권석호·권세원(權世遠)·권석효(權錫孝) 등 예천 권씨 문중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어서 10시쯤에는 용문면사무소가 위치해 있는 상금곡동에 시위 군중이 집결하였다. 이때 금곡동, 이웃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권석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선창 이후에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 앞을 지나 마을 곳곳과 장터를 돌면서 ‘만세’를 외쳤으며,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소식을 들은 용문헌병출장소의 헌병들이 출동하였고, 총칼을 앞세워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헌병들은 주도자 11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이후에 다시 6명을 붙잡아 갔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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