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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年 壬辰倭亂 때 맏아들 鄭晛과 함께 義兵을 일으켜 스승 高敬命의 義陣 에 合流하였던 義兵將 鄭遵一의 詩文集 木活字本 [向北堂鄭先生遺稿] 上中下卷 全1冊 單(狀態良好함)

1592년 임신왜란 때 맏아들 정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스승 고경명의 의진 에 합류하였던 의병장 정준일의 시문집 목활자본 [향북당정선생유고] 상중하권 전1책 단(상태양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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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31 (190336HYLTI)

경매일자 2019.04.2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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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遵一(1547 ~ 1618) 선생은, 조선 중기의 의병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택중(擇中)이며, 호는 향북당(向北堂)이다.

나주군(羅州郡) 남평(南平) 출생으로 좌찬성(左贊成) 정계동(鄭繼童)의 현손(玄孫)이자, 교위(校尉) 정종요(鄭宗堯)의 아들이다. 아들로 정현(鄭晛) 정준(鄭晙) 정만(鄭晩)이 있는데 맏아들 정현은 1606(선조 39) 병오증광사마시(丙午增廣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선생의 문인으로 박종정(朴宗挺), 송제민(宋濟民)과 함께 제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제봉선생이 초토사(招討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자 합세하여 맏아들 정현과 조카 정사(鄭賜) 등과 함께 종군하였으며 금산(錦山) 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질병으로 귀향하였다. 금산전투 패전 후,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후진양성에 힘써 덕룡학당(德龍學堂)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후일 선무원종훈록(宣武願從勳錄)을 받게 되었으며 상호군(上護軍)에 추증되었다. 1678(숙종 4)에 건립한 풍산사(楓山祠)에 김만영(金萬英) 임세정(任世鼎) 정익신(鄭翊臣)과 같이 배향되었다. (출처/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卷頭에는 陽城人 李柄壽序文이 실려 있다.

 

상태 양호.

세로 31.3 cm, 가로 2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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